일상

추억의 사진

JOOFEM 2013. 4. 6. 11:47

* 일이학번쯤 되는 재학생 후배가 홈페이지를 만들었다고 연락해 와서 홈피를 들어가 보니 추억의 사진들이 많이 있었다.

내가 소장하지 않은 사진이 있어 옮겨왔다. **대학 적십자학생회는 사년 내내 나를 행복하게 해준 써클이다.

아직도 후배들이 그 써클을 운영하고 있는 것도 자랑스럽다.

육팔학번부터 시작되었으니 사십오년의 역사를 가진 써클인 셈이다.

* 일천구백팔십일년, 겨울 농촌봉사활동 사진이다.강원도 평창군 고길리에서 그 깡추위를 견디며 봉사하고 퇴소식하는 사진이다.

영하의 날씨에 찬물에 머리 감고 찍은 사진이다. 여학생들은 머리 못감아서 우울한 표정이다.ㅋㅋ

주페의 어깨에 손 얹어준 선배가 요즘 미술로 뜬 선동기선배이다.

삼십년이 넘어서 밝히는 비화이지만 경희가 씻을 수 없는 환경이라 (수도가 없고 펌프물이고 찬 물이라......)

늘 우울모드라서 생필품 산다는 핑계로 데리고 나가 목욕탕에 넣어주고 총무인 나를 비롯 몇몇은 막걸리를 마셨던......

 

* 회장님은 가오다시(?)를 잡고 총무는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

 

* 부녀반 아동반 청소년반......중에서 내 맡은 반은 청소년반이다.

얘네들도 지금 오십을 향해 가는 중일 거다.

 

* 총무는 늘 수첩을 들고 모든 진행사항을 적고 관리한다.

지금 이 사진을 놓고 일이학번 학생후배들이 저 호피무늬 옷이 뭐냐고 묻는다.ㅎㅎ

마치 교복처럼 입었던 교련복은 가난한 나에게는 좋은 옷이었다.

가끔 잔디밭에 둘러앉을 때면 여학생 무릎덮개로 쓰이곤 했다.

 

* 나는 총무겸 문화부장이라 어딜 가도 등사기를 가져가 책자를 만들었다.

마을 소식지를 만들어 신문처럼 배달했는데 슬쩍 내 시도 한편 넣기도 했다.

 

* 가벼운 율동에도 청소년들은 좋아했다. 그 시절엔 슈퍼주니어도 소녀시대도 없었는데

아주 기본적인 노래만 불러도 율동이 먹혔었다.ㅎㅎ

 

* 항상 노래는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었다. 나는 주로 진로상담을 해준 기억이 난다.

중삼이었던 여학생 셋은 그 후로도 몇년 편지를 주고 받으며 진로상담을 해주었었다.

어느 하늘아래에서 잘 살고 있기를.

 

* 마을 소식지를 배달하러 가는 중. 해발 오백정도 되는 깡촌이라 화장실 시설이 미비해 여학생들은 곤욕을 치루었다.

이 후배가 지금은 웃고 있어도 퇴소할 때는 많이 힘들어 했다.

 

* 회장이 자리를 비웠나? 내가 앞에서 한마디 하고있다.

 

* 아동반에서 마을잔치할 때 연극을 하고 있다. 그 깡촌(고길리는 산간지방이고 감자와 옥수수가 주산물이다)에서도

색동저고리를 입히고 연극을 했다. 하루 두번인가 버스가 운행할 정도로 외진 마을이었다.

 

* 개천을 정비하고 돌아오는 길이다.

 

* 민감했던 시기라서 학생들이 딴짓할까봐 면장쯤 되는 사람이 와서 일장 훈시를 했던 것 같다.

 

* 주페는 항상 수첩을 들고 있었다. 뒷짐 지는 버릇은 저때에도.....ㅋㅋ

 

* 요건 무슨 엠티일 때일 것이다. 역시나 교련복과 청바지 모드로......

 

* 모이면 통키타로 노래를 했다. 태평양에 고래가 살고 문어가 피아노를 쳤다던가. 주페의 머리가 짧은 걸 보니 삼학년이다.

 

* 하두 많이 불러서 가사집이 없어도 부르던 노래들,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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