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만나러 간다 [김 언]
사람을 만나러 간다.
사람을 만난다는 게 전혀 시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도 나의 만남은 지속적이고 끈질기다.
나는 조바심이 많은 문학이다. 징그러울 정도로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러 간다.
둘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고 가겠는가.
우리는 시적으로 충분히 지쳤다. 둘 사이에
어떤 시도 오고 가지 않지만 우리는 충분히
괴로워하고 있다. 그 얼굴이 모여서
시를 얘기하고 충분히 억울해하고 짜증을 부리고
돌아왔다. 사람을 만나러 간다.
더 만날 것도 없는 사람이 더 만날 것도 없는
사람을 만나러 간다. 시를 얘기하려고
오늘은 내 주머니 사정을 들먹이고
내일은 내 자존심의 밑바닥을 꽝꽝 두드리고
망치나 해머 뭐 이런 것들로 내 얼굴을 때리고 싶은
상황을 설명하고 그럼에도 꺼지지 않는 불씨를 들먹이는
너를 만나러 간다. 사람을 만나러 간다.
너 또한 내일은 사람을 만나러 간다. 꺼지지 않는 불씨를
확인하려고 네가 만나는 사람과 내가 만나는 사람.
거기서 시가 오는가? 거기서 시를 배우는가?
우리의 만남이 전혀 시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도 시에 대한 얘기는 끝이 없다. 억울할 정도로
길고 오래간다. 꺼지지 않는 이 불씨가
시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아니다. 사람을 만나러 간다.
* 詩, 사랑.
시를 사랑한다는 게 때로는 사람을 사랑하게도 된다.
시가 따지고 보면 사랑에 관한 노래가 아닐까.
살아있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요,
사랑한다는 것은 뭐가 되었든지 노래한다는 것이다.
가을이 가는 걸 아쉬워하며 또, 시적이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만나 시 얘기를 했다.
세작을 마시고 오미자차를 마시고 레드카페와 복분자음료를 마시고도
동동주를 마시며 시 얘기를 했다.
참 시시해 보여도 시적이지 않아도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우리가 자주 가던, 맛은 없는 '시인'이 문을 닫았다.
천둥소리에 놀라 자빠졌나보다.
인사동, 물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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