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사람을 만나러 간다 [김 언]

JOOFEM 2013. 11. 24. 18:40

 

 

 

 

 

 

 

사람을 만나러 간다 [김 언]

 

 

 

 

 

사람을 만나러 간다.

사람을 만난다는 게 전혀 시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도 나의 만남은 지속적이고 끈질기다.

나는 조바심이 많은 문학이다. 징그러울 정도로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러 간다.

둘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고 가겠는가.

우리는 시적으로 충분히 지쳤다. 둘 사이에

어떤 시도 오고 가지 않지만 우리는 충분히

괴로워하고 있다. 그 얼굴이 모여서

시를 얘기하고 충분히 억울해하고 짜증을 부리고

돌아왔다. 사람을 만나러 간다.

더 만날 것도 없는 사람이 더 만날 것도 없는

사람을 만나러 간다. 시를 얘기하려고

오늘은 내 주머니 사정을 들먹이고

내일은 내 자존심의 밑바닥을 꽝꽝 두드리고

망치나 해머 뭐 이런 것들로 내 얼굴을 때리고 싶은

상황을 설명하고 그럼에도 꺼지지 않는 불씨를 들먹이는

너를 만나러 간다. 사람을 만나러 간다.

너 또한 내일은 사람을 만나러 간다. 꺼지지 않는 불씨를

확인하려고 네가 만나는 사람과 내가 만나는 사람.

거기서 시가 오는가? 거기서 시를 배우는가?

우리의 만남이 전혀 시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도 시에 대한 얘기는 끝이 없다. 억울할 정도로

길고 오래간다. 꺼지지 않는 이 불씨가

시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아니다. 사람을 만나러 간다.

 

 

 

 

 

 

 

* 詩, 사랑.

시를 사랑한다는 게 때로는 사람을 사랑하게도 된다.

시가 따지고 보면 사랑에 관한 노래가 아닐까.

살아있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요,

사랑한다는 것은 뭐가 되었든지 노래한다는 것이다.

가을이 가는 걸 아쉬워하며 또, 시적이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만나 시 얘기를 했다.

세작을 마시고 오미자차를 마시고 레드카페와 복분자음료를 마시고도

동동주를 마시며 시 얘기를 했다.

참 시시해 보여도 시적이지 않아도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우리가 자주 가던, 맛은 없는 '시인'이 문을 닫았다.

천둥소리에 놀라 자빠졌나보다.

인사동, 물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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