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정을 필사하다 [박제영]
대중도 없고 환호도 없고 독자도 없는 곳으로 가십시오. 그곳에 자리잡으
면 당신의 독자가 새로 창조될 것입니다. ― 오규원『날이미지와 시』에서
말의 가장 안쪽의 풍경을 필사한다
낡은 비유의 극장을 지나고
비문과 주문의 공동묘지를 지나고
휘발된 청춘의 황무지를 지나고
말의 맨 끝에 다다르면 마침내
대중도 없고 환호도 없고 독자도 없는
말의 캄캄절벽
이제 뛰어내리기만 하면 되는데
저 아뜩한 천 길 낭떠러지!
한 걸음만, 딱 한 걸음만 더 내딛으면 되는데
오, 미안하다
차마 뛰어내릴 용기가 내겐 없느니
당신의 독자, 노릇, 하기란, 너무나, 힘들어
* 처음 진이정이란 이름을 들었을 땐 여류시인이겠거니 했다.
기형도와 비견되는 요절시인으로 분명한 남자시인이다.
(그래도 이름은 여자이름 같다. 진이정.)
박제영시인의 a4동인들이 진이정시인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동인지를 낸다 해서
23년전에 영면한 진이정시인은 행복한 시인이라 생각했다.
뜻밖에 크리스마스이브에 '진이정을 필사하다'가 선물이 되어 배달되었다.
보내주신 박제영시인께 감사하고
동인지를 오래오래 읽으며 진이정이라는 한 시인, 한 인간을 알아가는 여행을 할 것이다.
곧 진이정의 거리가 춘천에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으니
진이정의 시가 복원되고 그의 시가 많은 시민들에게 빛나는 별이 될 것을 믿는다.
'詩人을 찾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 속의 시인, '김관식' (4) | 2024.09.07 |
---|---|
[스크랩]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이솝님 수상) (0) | 2016.01.21 |
청마문학관 (0) | 2015.08.04 |
윤관영 시집 뒤표지글(고영민시인의 글) (0) | 2015.07.14 |
박제영시인의 PHO-EM전 (0) | 2015.0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