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하루 종일 궁금한 양초 [강우근]

JOOFEM 2024. 4. 19. 22:03

 

 

 

 

 

하루 종일 궁금한 양초 [강우근]

 

 

 

 

  하나의 불이 꺼질 때 나의 영혼이 어디로 옮겨 가는지 궁

금해

  내가 희미해질 때 왜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얼굴은 전부

검게 물들어가는지

  내가 사라질 때 또다른 빛을 보는 아이들의 표정은 얼마

나 생생할까

  어디선가 달리고 있을 아이들은 모래알처럼 빛이 날까,

초원의 풀처럼 자꾸만 솟아날까

  용기가 없는 사람의 용기가 정말로 궁금해

  잠들기 싫은 날에 나를 오래도록 켜놓은 사람의 다음 날이

  힘을 내려고 밥을 푹푹 떠먹는 사람의 아침 인사가 궁금해

  공기 중에 떠다니는 이 하얀 연기는 내가 말하는 방식일

까, 당신이 말하는 방식일까

  사람들은 영원히 살 것처럼 나를 자꾸만 피운다

  나는 당신에게 몇분의 기억이 될 수 있을지

  당신이 읽는 책의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

  당신이 울면서 했던 기도가 이루어졌을

  세계에서 당신이 지을 환한 미소가

 

 

              - 너와 바꿔 부를 수 있는 것, 창비, 2024

 

 

 

 

 

 

 

 

 

* 학생일 때, MT를 가면 저녁식사를 마치고 넓은 실내에 모여

컴컴한 가운데 양초 하나씩을 켜고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는 시간을 갖곤 했다.

눈은 초롱초롱했고 입술로 하는 말마다 엄숙하고 진지했던 기억.

영혼이 맑아지는 것 같고 함께한 학생들과는 영원을 약속해도 좋을 것 같았다.

우리에게 미래에는 어떤 세계가 펼쳐지더라도 

하나의 마음이 되어 연결될 거라고 믿음을 가졌었다.

 

그런 우리들을 양초는 무척 궁금해했나보다.

훅 불어 꺼질 때에도 하얀 연기를 오래오래 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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