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리얼리티 [전욱진]

JOOFEM 2024. 5. 4. 10:20

 

 

 

 

 

리얼리티 [전욱진]

 

 

 

 

시간을 여행한다

영화에서 그랬다

 

앉아있는 나는 저렇게

먼저 다녀온 다음에

말해줄 수 없겠지

 

미래의 불행을 막으려고

사랑하는 이의 생명을 지키려고

눈에 보이는 선한 의지까지도

여기 앉은 나한테는 없는 것

 

이미 일어난 일의 주변을 서성이며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은 정말 그래

회상을 통해 더 잘 알게 되었다

 

영화 속 사람들은 끝내

불가능한 일들을 해내고

가장 긴요한 역할을 수행해낸

한 사람의 내레이션이 들리고

 

그렇게 이 모든 일은 과거가 되어간다

화면 밖으로 영화가 길게 이어진다면

그들은 이를 추억이라 부를지 모른다

 

이게 벌써 십년 전이구나

같은 영화를 열번쯤 보는 나는

플래시백이라는 기교를 부려본다

 

과거를 다시 돌보아

현재를 돕고 싶지만

 

감정의 고조는 이제 없어

눈 감고 누우면 그래도 잠이 왔다

지키지 못한 것을 지켜내는 것은

꿈에서나 그랬고

 

 

           -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 창비시선 500 기념시선집, 2024

 

 

 

 

 

* 가끔 스마트폰에 5년전 지금 사진, 삼년전 지금 사진이 몇장 뜬다.
아, 맞아! 그땐 그랬지.
대개 멋있는 장면으로 플래시백 되어서
구글 이놈들 별짓을 다하는구나. 기특하게!라는 생각을 한다.

강렬하거나 잔인하거나 슬픈 장면이 플래시백 되지 않으니 다행이다.

 

'시와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허공에 매달린 사람 [이근화]  (0) 2024.05.09
악착齷齪 [권혁웅]  (1) 2024.05.05
낮달 [이병률]  (0) 2024.04.30
내면의 방 13도 [최돈선]  (0) 2024.04.27
풀밭나라에서 안부를 [이기철]  (1) 2024.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