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악착齷齪 [권혁웅]

JOOFEM 2024. 5. 5. 10:17

악착같이!

 

 

 

 

 

악착齷齪 [권혁웅]

 

 

 

 

  몰강이라, 파고가 제법 높은 강이라고 들었다 오래된 고성 하나쯤 모퉁이에

세워둔 동유럽의 수로 아닌가 싶었다 몽골 기병들이 옥작옥작 몰려들 때 죄

어드는 공포로 제 몸에 입 벌린 표정을 새겼다던가 동그랗게 오므린 순음은

끝내 내향성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몰강은 따로 없고 몰강의 그림자만 드리워

져 있다 몰강스럽다(형) 모지락스럽고 악착스럽다 모지락은 그 강에 사는 조

개의 일종, 슬픔을 오래 섭식하면 패류 독소를 품어 위험하다고 한다 끓는 물

에서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수면에 얼비치는 문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모지락스럽다(형) 몰강스럽고 악착스럽다 그러니까 몰강의 조개는 그 강의 화

신이기도 한 것, 어디에나 후렴처럼 악착이 붙어 있다 악착에 들러붙은 저 촘

촘한 이빨들을 보라 입 벌린 조개 같은 것, 한 벌의 틀니처럼 꽉 물고는 떨어

지지 않는 것이 거기에 있다 이별하는 자리에서 울면서 상대의 몸을 깨문 애

인이 있었다 이러면 날 기억할 거예요 떠나온 그는 때로 제 몸에 쌓인 그 조그

만 패총을 바라본다

 

 

                  - 시와 세계 2024 봄호

 

 

 

 

 

 

* 왜 나는 이별하는 자리에서 울면서 내 몸을 깨문 애인이 없었을까
착해 빠져서 그랬을 거야. 생각하면서도 
슬픔을 오래 섭식하지 않았던 터라 독소를 품지 않은, 마음의 상처만 남아 있는 것일 게야.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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