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크 [김미량]
잘라낸
식빵 테두리를 살려야 한다고
오전의 주방으로 뛰든 사람
버릴 것도 아닌데
버려지리라는 앞서가는 마음의 테두리처럼
문 여는 소리에 놀라
빵 터져버린
비닐봉지를 뜯던 배고픔처럼
테두리가 전부인 우리를 나란히 펼쳐놓고
고민에 빠졌던 그날
홀짝은 게임이잖아
네가 이기고 내가 지거나
그 반대이거나 우리는 말다툼에 집중하지
훌쩍은 습기 가득한 습관인지
식빵의 슬픔인지
부드러울 때 먹어야 한다는 거
사랑도 식탐도 시효가 있다는 거
오후의 간식을 위해
바삭한 에어프라이어 온도를 예열한다
시나몬 가루 톡톡 뿌린다
우리는 거절하기 힘든 버터 향을 맡았을 거야
화해의 세계로 뛰어들어
마주 보고 킁,킁,
- 신의 무릎에 앉은 기억이 있다, 달아실, 2023
* 할아버지는 늘 할머니에게 식빵껍질을 벗겨주고 껍질만 먹었습니다.
할머니는 냠냠 식빵의 속살만 먹었습니다.
오십년이 지난 어느날 할아버지가 식빵껍질을 할머니에게 확 던지고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 이느무 할망구야, 나도 속살이 먹고 싶다구.
오십년동안 참았던 할아버지의 사랑이 참 대단합니다.
식빵껍질, 잘 튀겨서 러스크로 바삭바삭 사이좋게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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