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지속 가능한 이야기를 찾아서 [주민현]

JOOFEM 2024. 7. 6. 14:24

지속 가능한 길이 꼭 열리길!

 

 

 

 

 

지속 가능한 이야기를 찾아서 [주민현]

 

 

 

 

빛나는 드레스와 턱시도 없이도

우리는 아름다울 수 있다는 선언

 

지속 가능한 행복을 찾아서

 

구두를 벗어던지고 턱시도를 젖히고

춤을 추며 입장하는 이들이 있네*

 

흰 지점토를 뭉치면 언제나

이상한 조형물 같아 보이듯이

 

미래의 이야기에는

아직 빚어지지 않은 인간의 형상이 있다

 

사랑은 튼 살조차 몸에 난 창문

블라인드 사이로 내리쬐는 볕이나 물결처럼 보이게 하는

 

드물게 아름다운 세계여서

우리는 입장과 퇴장을 반복하겠지 서로를 터널처럼,

 

실수로 알록달록한 드레스를 만들어버린 재단사에게는

꿈과 함께 발생하는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수집하는 재주가 있고

 

이례적인 폭염과 가뭄, 타오르는 공장

넘치는 강물과 흘러내리는 산사태에도

 

우리가 모두 살아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생각되는 밤이면

 

드레스의 흰빛을 찢으며 입장하리

 

주머니가 터진 옷들은

세상의 모든 번식견을 껴안기에 좋고

 

자본주의에 무용한 구멍을 내며

 

알사탕 같은

이상한 긴 구멍 뚫린 모자를 함께 쓰고 나란히 걷기

 

흰 드레스와 검은 턱시도를 길게 이으면

양옆으로 흰건반과 검은건반이 끝없이 계속되는

 

거대한 피아노를 만들 수도 있고

들을 수 없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리

 

지속 가능한 이야기를 찾아서 걷다보면

 

* 이길보라 「90년대생의 결혼법」, 한겨레 2021.6.23

 

 

             - 멀리 가는 느낌이 좋아, 창비, 2023

 

 

 

 

 

 

 

 

 

* 정주영, 이병철, 구인회 등 경영인들이 지속 가능한 기업을 영위하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하고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돌아가셨다.

가업을 승계받은 2세들은 이제 3세들에게 물려주고 

역시나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무릇 평범한 가정도 지속 가능한 가정을 이끌어나가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하지만 요즘 세대는 결혼을 꿈꾸는 이가 많지 않다.

이례적인 폭염과 가뭄, 타오르는 공장 / 넘치는 강물과 흘러내리는 산사태에도

세대를 이어가려고 노력했던 세대에 비해

요즘 세대는 지속 가능한 가정이 아니라 혼자 살면서 인생을 즐기겠다는 것 같기도 하다.

결국 사회가 지속 가능하지 않게 되어

시골에는 노인들만 남아 슈퍼마켓조차 없는 곳에서 택배로 물건을 받아 생활할 것이고

대도시에만 젊은이들이 모여 삐까번쩍하는 인생을 즐겨보겠다는 것이다.

 

하도 많이 낳아서 둘만 낳아 잘 키우자던 사회가

제발 하나만이라도 낳아줄래? 애걸복걸하는 사회가 되었다.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속 가능한 이야기들을 많이 만들어야 할 게다.

드레스 재단하는 사람이 굶어죽었다는 이야기는 없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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