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그림 없는 미술관 [주민현]

JOOFEM 2024. 7. 14. 12:26

고흥, 그림없는 미술관

 

 

 

 

 

그림 없는 미술관 [주민현]

 

 

 

 

아직 전시가 시작되지 않은 미술관을 거닐며

당신과 나는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지구 저편에 있는 그림 없는 미술관에 대한

이야기에 금세 빠져들었어요

 

미술관에 그림이 없다면

무엇이 전시될까요

 

지구에서 동물이 사라진다면

작고 약한 것부터 무릎 꿇리게 될까요

 

밖에 불이 났나봐요

소방차가 왔으나 아직은 하늘이 거무스름하고

 

나는 창 안에서 개를 안고 있어요

개는 따뜻하고

인간을 맹목적으로 믿는 듯이

 

맹목적인 따뜻함

 

개를 사랑하지만 양을 먹어요

소를 입고요 말은 탑니다

 

인간과 동물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타오르던 연기가 걷히고

이제 그만 돌아갈게요

 

가볍게 눈 내린 아침에

인공눈물, 인공항문, 인공지능, 그 모든 인공에 대해 생각하다가

 

가볍게 내린 것들은 가짜 같군요

 

역 안에는 

구찌, 샤넬, 루이비통 없는 게 없고 가품에는 표정이 있고

가품은 흥미로워요

 

쉽게 구겨지는 쪽으로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간직하고

 

우리의 자동차, 모피 코트, 개들의 움직임

언제나 새들은 가볍게 날아오르고

 

엔진이 꺼진 곳에서 숨 쉬고 있는 작은 동물을 깨워

차를 몰고 도착하는 그곳에서

 

늙은 개는 아주 인간적인 미소를 띠고

 

프레임 없는

뒤바뀐

프레임을 초과하는

부정하는

뒤틀린 그림

아닌 그림 속으로

우리는 천천히 걸어들어갔어요

 

 

              - 멀리 가는 느낌이 좋아, 창비, 2023

 

 

 

 

 

 

 

 

 

 

* 그림 없는 미술관!

그림이 없어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즘 세상은 인공 어쩌구저쩌구하면서 발전된 것 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퇴보 되어가고 있다고 보여진다.

선진국일수록 이성과 올바른 판단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갈수록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것이 바로 그림 없는 미술관과 다를 바 없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표현되어진 것을 수긍하고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방향을 인지해야 하는데

오히려 생각이 없는 무뇌인간들 처럼 

생각이 없는 미술관 전시품이 되어가고 있다.

즉, 전시품 없는 미술관이라는 말이다.

 

가품에 열광하고 개에게 충성하는 인간들이 발명하고 추구하는,

그림없는 미술관에서 아무 생각 없이 어슬렁어슬렁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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