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그날 저녁의 생각 [조용미]

JOOFEM 2024. 10. 27. 08:39

커피잔의 온기

 

 

 

 

그날 저녁의 생각 [조용미]

 

 

 

 

  내 손을 주머니로 가져갔던 그 저녁은 살아 있는 듯

몹시 추웠다 물건처럼 나는 한쪽 손을 전달했다 낯선 골

목을 익숙한 듯 바라본다

 

  당신은 나의 괴로움을 모른다 당신은 나의 정처 없음

을 모른다  당신은 이 세계가 곧 무너질 것을 모른다

 

  우리는 잠시 코트 주머니 속의 공간을 절반씩 나누어

가졌다 당신이 그 순간을 기억해낼 수도 있다는 희미한

가능성을 나는 염두에 둔다

 

  우리는 아주 먼 오래전에 한 번쯤 만났을지도 모른다

는 생각을 당신이 하게 되려는 그 순간 손은 주머니에서

문득 빠져나왔다

 

  그날 밤은 몹시 추웠던가 당신의 주머니에 들어갔다

나온 손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와 단정하게 손목 아래

가만 놓여 있다

 

  당신이 하려던 생각처럼 우리는 죽기 전에 한 번쯤

만났을지도 모른다 서너 번일지도 모른다 온전하지 않

고 사라지지도 않는 기억이란 무엇인가

 

  나는 당신의 거짓을 모른다 당신의 죽음을 모른다 저

녁의 감정을 가장한 당신의 슬픔을 모른다 이 세계가 실

재가 아님을 모른다

 

 

       - 당신의 아름다움, 문학과지성사, 2020

 

 

 

 

 

 

* 한때 인사동에서 허그운동을 하던 때가 있었다.

두툼한 옷을 입고 허그를 해봐야 그닥 온기를 느낄 순 없겠지만

마음만은 온기를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나는 그 허그운동에 동참한 적은 없다.

다만 아주 추운 날 내 주머니를 내어준 적은 있다.

온기를 준다는 것은, 그게 사랑을 나누어 준다는 것과 같다는 것을 

한참 뒤에야 깨닫게 되었다.

목도리를 선물해 준 후배의 그 따뜻한 마음을 그땐 잘 몰랐다.

온기를 준다는 것, 내 손을 준다는 것이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는 것이고

크낙한 사랑이었다는 것을 한참 뒤에야 알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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