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껍질과 속살에 대한 고찰 [한숙]
겉은 단단하지만 속살은 무르다
물러 터졌다는 소리가 늘 날아와 가시처럼 박히곤 했다
의지는 강하지만 인정에 여린 호박
호박골 따라 핀 보름달을 잘라 찜기에 찐다
포슬포슬 하얀 속살로 익어가는 호박
껍질은 속살을 위해 온전히 자신을 내어 준다
내 사랑에도 껍질과 속살이 있었을까
딱딱한 껍질이 없었다면 속살도 없었겠지
세상 풍파 막아주신 부모님이 없었다면
여린 나도 없었겠지
껍질을 버리지 못하고 한 켠에 놓는다
단단하지만 가장 물렀던 사랑
- 웹진 『시인광장』 2025년 10월호
* 직장 생활 삼십년 할때에는 '외유내강'이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지만
이제 나이 먹고 강해봐야 먹히지도 않으니 외유내유, 흐물흐물한 사람이 되었다.
스스로 강한 나를 지키며 살아왔지만 이제부터는 흐물흐물하게 사는 게 맞다.
늙은호박의 껍질을 까려면 어찌나 단단한지 잘드는 칼로도 애를 먹는다.
하지만 껍질속의 속살은 뭉근하게 익혀주면 맛난 호박죽을 먹을 수 있다.
맛난 호박죽처럼 살아야겠다.
형수님이 늙은 호박을 하나 주어서 잘 모셔놓고 있는데 겨울이 되면
맛난 호박죽을 먹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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