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월의 시 [허연]
이별하는 것 말고 다른 것도 할 줄 아는 사람은 시월을
잘 모르는 사람이다. 병동으로 옮겨지기 시작하는 단풍
잎. 영혼이 빠져나가 파삭거리기만 하는 풀밭, 초속 오 센
티미터*로 떨어지는 마지막 열매들. 죽은 새끼들을 낙엽
에 묻고 날아가는 새들. 그리고 흙장난하는 아이들 이마
에 불어오는 사연 많은 바람. 시월엔 가득 찼던 것들과 뜨
거워졌던 것들이 저만치 떠날 짐을 꾸린다. 그걸 알아챈
추억들로 남쪽으로 가고. 시월엔 이별이 전부다. 시월은
이별밖에 할 줄 모른다. 시월에 무릎을 꿇는 이유다. 세상
엔 만남의 몫이 있는 만큼 헤어짐의 몫도 있어서 이토록
서늘하다
*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 제목.
- 작약과 공터, 문학과지성사, 2025
* 한동안 더웠던 공기를 식혀주었던, 에어컨과 선풍기와 이별을 고했고
나무마다 주렁주렁 달렸던 과일들이 하나둘씩 떨어져나가고
그나마 까치들 먹으라고 남긴 과일들만 덩그러니 마지막 나뭇잎처럼 매달려 있다.
계절의 변화를 확실하게 전달하고 안녕을 고하는 시월은
마음이 남쪽을 향하고 쓸쓸함도 남쪽을 향한다.
따뜻한 햇살의 추억을 뒤로 하고 봄날의 소식을 기다리며 이별의 노래를 불러본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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