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지와 편지봉투[오규원]
당신의 편지를 오후에 받았습니다
그래도 햇빛은 뜰에 담기고 많이 남아
밖으로 넘쳤습니다
내 손에서는 사각사각 소리가 났습니다
당신의 편지는 사각 봉투였습니다
사각 봉투 끝은 오후의 배경을 가리켰습니다
당신의 편지는 A4 용지였습니다
A4 용지는 단정하고 깍듯했습니다
A4 용지는 나의 그늘을 잘 담겼지만
바람은 담기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두 겹으로 하얗게 접혀 있었습니다
* 활기가 떨어지는 나이에 받은 편지는 얼마나 반갑고 소중한 것인가.
게다가 단정하고 깍듯한 마음은 내 어릴 적이나 가졌던 소신과 신념이었는데
이제 사각이긴 하지만 어느덧 닳고 닳은 나의 때묻은 마음에 어릴 적 소망은 사라져버렸다.
이렇게라도 사는 것이 신기하고 마음을 쓸어내리지만 그래도 두겹으로 나의 이 부끄러운
마음을 감추어 주는 센스가 고맙고 감사하다.
가끔 받는 당신의 편지가 늘 사각봉투에 사각 편지지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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