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커다란 가방 때문에 [성미정]
남편은 내가 끌고 다니는 커다란 가방 안에
무엇이 들어 있나 궁금해서 결혼했고
나는 남편이 내가 지고 다니는 커다란 가방을
받아주는구나 착각해서 결혼했고
결혼하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좀 더
커다란 가방만을 원했고
남편은 내가 온갖 잡동사니 쑤셔 넣고 다닐까
더 커다란 가방을 못 사게 하고
툭하면 좀 더 커다란 가방 때문에 다투면서도
나는 남편에게 더 커다란 가방이 왜
필요한지 이해시키지 못했다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헤어지지 못하고
남편은 내가 자기랑 헤어지고 더 커다란 가방을
끌고 다닐 꼴을 못 봐서 헤어지지 못하고
오나가나 그놈의 커다란 가방 때문에
만난 우리는 그놈의 커다란 가방 때문에
헤어지지도 못하고
* 가방이 욕심이란 걸 뒤늦게 깨닫습니다.
큰 가방이 좋은 게 아니라는 겁니다.
좋은 가방이 나의 자존심은 아니라는 겁니다.
가방끈이 길어서 세상을 편하게 사는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죄다 쑤셔넣었던 것 죄다 버리고
좋았던 느낌도 손때묻어 낡아버리고
어깨를 편하게 했던 긴 끈도 어느덧 맬 일이 없어져버렸습니다.
가방은 오늘의 나를 있게한 존재이유이기도 하지만
장차 내려놓아야 할 짐이기도 합니다.
이제 커다란 가방은 버리려 합니다.
내 양손에 들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족하며 살으렵니다.
다만 한손에 당신의 한손이 들려진다면
그것이 당신이 이끄는 삶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