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소풍갑시다[허수경]

JOOFEM 2006. 9. 30. 10:35

 

 

                              * 누구네 소풍인지 맛있겠네.

                                 그런데 김밥은?

 

 

                                        * 허걱. 김밥은 다람쥐가......

 

 

 

 

 

 

 

 

소풍갑시다 [허수경]

 

 

 

 




그대가 나의 오라비일 때,
혹은 그대가 나의 누이일 때
그때 우리 함께 닭다리가 든 도시락을 들고
소풍을 갑시다,
아직 우리는 소풍을 가는 나날을
이 지상에서 가질 수가 있어요,
우리는 그 권리가 있어요,
소풍을 가는 날,
가만히 옷장을 보면
아직 개키지 않은 옷들이 들어 있어도
그냥 둡시다, 갈잎 듣는 그 천변에서
우리는 다시 돌아올 것이므로,
돌아올 것이므로,
그날 그 소풍에 가지고 갈 닭다리를 잘 싸고
포도주 두어 병도 준비하고,
그대가 내 오라비로만 이 지상에서
그대가 나의 누이로만 이 지상에서
살아갈 것을 서약은 할 수 없을지라도
오래 뒤에 내가 그대를 발굴할 때,
그대의 뼈들이 있을 자리에 다 붙어 있었으면 합니다,
그 이름 없는 집단무덤에서
우리는 얼마나 머리 없는 뼈들을 보았던가요
울지 맙시다,
작은 소녀가 웅크린 그 부엌 안에 작은 불을 켜며
라디오를 켜며 서약한
많은 나날들이 연빛 웃음처럼,
소녀 또한 연등빛 웃음처럼
저 폭약 많은 오후에 사라져갈지라도
우리들이 먹은 닭다리가
저 천변에 해빛에서 아득해질지라도
오 오 소풍을 갑시다,
울지맙시다



* 천상에서 지상으로 잠시 소풍을 온건데

  때로는 소풍갈 때처럼 들뜬 마음었다가

  때로는 머리없는 뼈때문에라도 슬피 울다가

  그래서 스러져 가는 만물앞에

  아득하고 아뜩해질지라도

  기왕 나온 소풍, 닭다리 뜯으며

  환한 웃음 웃으며

  당신이 애인이건, 아니건

  지상에서 만난 귀한 인연인데

  뼈조각을 퍼즐처럼 찾지만 말고

  소풍을 갑시다.

  떠납시다,가 아니고

  소풍을 갑시다.

  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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