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景 -박수근[이영식]
늦가을 해질 무렵
노인 셋 방앗간 담벼락 앞에 붙어 벽화를 그리고 있다
어쩌다 어르신네들이 함께 오줌발을 세우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알곡 익히던 땡볕의 시간 건너와
의지가지없는 석양빛 등에 진 모습들 따뜻하다
회백색 담장에 그려지는 그림이 영 시원치 않았던지
옆 그림자 힐끔거리던 한 노인 다시금 붓대를 고초세운다
어떤 彩色도 녹슨 쇳조각 같은 저녁
지나던 개가 곁에 붙어 다리 치켜드는 것을 보고
누군가 싱겁게 한마디 던지는데
천당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멀다, 멀어...
畵.1-박수근
눈물이 싫어
한숨이 싫어
추켜세운 어깨
하얀 저고리
고목나무 늘어선 길로
광주리 이고 가는
아낙네
왜 이리 걸음은 더뎌
빨랑 가서 아이 젖 물려야지
왜 이리 걸음은 더뎌
빨랑 가서 시아버지 밥 차려드려야지
마음만 앞서
쭈그리고 모여 앉은 노인과 아이
하늘을 보잖고
기다리느니 깜장 고무신
"집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멀어 멀어......"
더욱 긴 눈물과 한숨.
[1980 주페]
* 일천구백팔십년 리어카에서 파는 박수근의 화집을 접하고 이런 화가가 있었구나 했다.
이중섭보다 더 한국적인 화가이어서 서민적이고 생활적인 그림을 좋아하게 되었다.
마지막 남긴 말이 천당이 멀다.....멀다.....였다고 한다.
착하게 살았어도 천당은 여전히 먼 모양이다.
이영식시인은 2000년에 신인으로 등단 하신 분이다.
우연히 만난 위의 시는 나의 일천구백팔십년을 돌아보게 했다.
행복한 삶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왜 이리 멀어..... 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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