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노을.景-박수근/畵.1-박수근

JOOFEM 2006. 9. 29. 20:37
 

 

 

 

 

 

 

노을.景 -박수근[이영식]

 

 

 

 

 

 

늦가을 해질 무렵

노인 셋 방앗간 담벼락 앞에 붙어 벽화를 그리고 있다

어쩌다 어르신네들이 함께 오줌발을 세우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알곡 익히던 땡볕의 시간 건너와

의지가지없는 석양빛 등에 진 모습들 따뜻하다

회백색 담장에 그려지는 그림이 영 시원치 않았던지

옆 그림자 힐끔거리던 한 노인 다시금 붓대를 고초세운다

어떤 彩色도 녹슨 쇳조각 같은 저녁

지나던 개가 곁에 붙어 다리 치켜드는 것을 보고

누군가 싱겁게 한마디 던지는데

 

천당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멀다, 멀어...

 

 

 

 

 

 

 

 

 

 

 

 

 

畵.1-박수근

 

 

 

 

 

 

눈물이 싫어

한숨이 싫어

추켜세운 어깨

하얀 저고리

 

 

고목나무 늘어선 길로

광주리 이고 가는

아낙네

 

 

왜 이리 걸음은 더뎌

빨랑 가서 아이 젖 물려야지

왜 이리 걸음은 더뎌

빨랑 가서 시아버지 밥 차려드려야지

마음만 앞서

 

 

쭈그리고 모여 앉은 노인과 아이

하늘을 보잖고

기다리느니 깜장 고무신

 

 

"집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멀어 멀어......"

 

 

더욱 긴 눈물과 한숨.

 

               [1980 주페]

 

 

 

 

 

 

 

* 일천구백팔십년 리어카에서 파는 박수근의 화집을 접하고 이런 화가가 있었구나 했다.

  이중섭보다 더 한국적인 화가이어서 서민적이고 생활적인 그림을 좋아하게 되었다.

  마지막 남긴 말이 천당이 멀다.....멀다.....였다고 한다.

  착하게 살았어도 천당은 여전히 먼 모양이다.

  이영식시인은 2000년에 신인으로 등단 하신 분이다.

  우연히 만난 위의 시는 나의 일천구백팔십년을 돌아보게 했다.

  행복한 삶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왜 이리 멀어..... 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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