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 14

시 속의 시인, '백석'

정기구독 목록  [최갑수]  나의 정기구독 목록에는늦은 밤 창가를 스치는 빗소리와그 빗소리를 들으며 슬쩍슬쩍 읽어보는윤동주 백석 박용래 같은 눈물을 닮은 이름몇 자들 새벽녘 앞마당에 고여 있는막 떠다놓은 찻물처럼 말갛기만 한 하늘기다릴 필요 없어요, 바람난 애인이또박또박 적어준 빛이 바랜 하늘색 편지읍내에서 단 하나뿐인 중앙극장의야릇하게 생긴 배우들 그 배우들이슬픈 얼굴로 보여주는 화끈한 '오늘 푸로'환절기마다 잊지 않고 찾아오는사나흘간의 감기 그때마다 먹는 빨갛고노란 알약들, 일요일 담에 널어 말리는초록색 담요와 그 담요를 말고 자는둥그스름한 낮잠 그 낮잠 위로헬리콥터가 한 대 가끔 부르르르저공 비행을 하다가 돌아가기도 하고 내 낮잠도부르르르 따라 흔들리기도 하고 낮잠에서 깨어멍한 눈으로 바라보는 시들..

詩人을 찾아서 2024.09.07

시 속의 시인, '김종삼'

김종삼 전집 [장석주]―주역시편ˇ22   정처없는 마음에 가하는다정한 폭력이다.춤추는 소녀들의 발목,혀 없이 노래하는 빗방울,날개 없이 날려는 습관이다.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이정표,또다시 봄이 오면누가 봄을 등 뒤에 달고벙거지를 쓰고 허청허청 걸어간다.그가 누구인지를잘 안다. 오리나무에서 우는 가슴이붉은 새여,오리나무는 울지 않고바보들이 머리를 어깨에 얹은 채 지나가고4월 상순의 날들이 간다.밥때에 밥알을 천천히 씹으며끝끝내 슬프지 않다.죽은 자들은 돌아오지 않고오직 기일과 함께돌아오는 5월의 뱀들.풀숲마다 뱀은 고요의 형상을 하고길게 엎드려 있다.감상적으로 긴 생이다.배를 미는 길쭉한 생 위로얼마나 많은 우아한 구름들이 흘러갔는가.개가 죽은 수요일 오후,오늘이 습기를 부르는 바람이 분다.날은 벌써 더워..

詩人을 찾아서 2024.09.07

시 속의 시인, '김수영'

뇌 [서동욱]―또는 김수영의 마지막 날 대지여, 영예로운 손님을 맞으시라 ―오든   1술 취한 시인은 이번에도 이길 것 같았다" 너는 왜 이런,신문 기사만큼도 못한 것을 시라고 쓰고 갔다지? "인격에 싸가지라고는 조금도 없어서그는 죽은 이에게도 뒤에서 욕을 한다아니면 빈말 한마디 하는 데도 수전노 같다"거짓말이라도 칭찬을 쓸 걸 그랬다"시인은 이번엔 자기 자신을 이길 것 같았다자신을 칭찬하고 싶지 않은 나머지 이제,비틀거리며 차도 위로 내려오는구나( " 당신한테도 이겨야 하겠다 " )이 못된 성질  2심야 버스가 멈춰 서고계란찜을 만들려고 사기그릇에 탁껍데기를 치는 충격같은 것이 머리를 지나갔으며남극에 떠 있는 얼음처럼 두 눈 뒤에 둥둥 떠 있던 뇌는이제야 당황하며자신이 견고한 조직을 자랑하는얼음 덩어리..

詩人을 찾아서 2024.09.07

시 속의 시인, '김관식'

시인학교 [김종삼]    공고오늘 강사진음악 부문모리스 라벨미술 부문폴 세잔느시 부문에즈라 파운드모두결강.김관식, 쌍놈의 새끼들이라고 소리지름.지참한 막걸리를 먹음.교실 내에 쌓인 두꺼운 먼지가 다정스러움.김소월김수영 휴학계전봉래김종삼 한 귀퉁이에 서서 조심스럽게 소주를 나눔.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 5번을 기다리고 있음.교사.아름다운 레바논 골짜기에 있음.                  -  김종삼을 생각하다, 예서, 2021  김관식 [김진경]    나는 그의 얼굴을 본 적도 없고나는 그의 시를 변변히 읽은 것도 없어하지만 그는 엄연히내 시의 가장 큰 스승이야내 젊은 시절그와 강경상고 동창이라는 큰 형은나를 만류해보려고늘 그를 들먹거리곤 했지보릿고개를 넘는 시골에 시를 씁네 하고하얀 양복에 백구두 지팡..

詩人을 찾아서 2024.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