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 14

시 속의 시인, '천상병'

천상병 씨의 시계 [김규동]어려운 부탁 한 번 한 뒤면주먹만큼 큼직한 동작으로저고리 소매를 걷어올리고시계를 봤다칠이 벗겨진천상병 씨의 시계에남도 저녁노을이 비꼈다시계 없이도시간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노라고얼어드는 언어의 층계를 오르내리는 내게천상병 씨의 낡아빠진 시계는어째서 자꾸뭉클한 감정만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일까.                 - 깨끗한 희망, 창작과비평사, 1985년    인사동 사람들 [오탁번]    인사동에 가면이 사람 저 사람사람들을 많이 만났었다중앙일보 손기상 선배도 가끔 만났다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품「순은이 빛나는 이 아침에​」는투고할 때의 제목은 「겨울 아침행」이었는데문화부 젊은 기자였던그가 바꾼 것이었다아아, 반세기가 다 돼가는구나시인, 교수하면서 내가 나를..

詩人을 찾아서 2024.09.07

시 속의 시인, '김소월'

천변에서 [신해욱]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김소월, 「개여울」  이쪽을 매정히 등지고검은 머리가 천변에 쪼그려 앉아 있습니다 산발입니다 죽은 생각을 물에 개어경단을 빚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동그랗고작고가자 없는 것들 차갑고말랑말랑하고당돌한 것..

詩人을 찾아서 2024.09.07

시 속의 시인, '박용래'

섬망* [육근상]      난닝구 바람으로 쉬고 계시는 김수영 선생님 찾아뵙고 닭모이라도 한 주먹 집어주고 와야 하고, 막걸리 한 사발로 연명하시는 천상병 선생님 업고 동학사 벚꽃 놀이도 다녀와야 하고, 새벽부터 울고 계시는 박용래 선생님 달래어 강경장 젓맛도 보러가야 하고, 대흥동 두루치기 골목 건축 설계사무소 내신 이상 선생님 개업식도 가봐야 하고, 빽바지에 마도로스파이프 물고 항구 서성이는 박인환 선생님이랑 홍도에도 가봐야 하고, 울음 터뜨린 어린애 삼킨 용당포 수심 재러 들어갔다 아직 나오지 않는 김종삼 선생님 신발도 갔다 드려야 하고, 내 사랑 자야 손 잡고 마가리로 들어가 응앙응앙 소식 없는 백석 선생님께 영어사전도 사다드려야 하고, 선운사 앞 선술집 주모가 부르는 육자배기 가락에 침 흘리고 ..

詩人을 찾아서 2024.09.07

시 속의 시인, '정지용'

시 읽어주는 시인 [이선영]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김소월 새로운 세계 하나를 낳아야 할 줄 깨칠 그때라야 비로소 우주에게 없지 못할 너로 알려 질 것이다 시인아, 이상화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백석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윤동주 오, 삼림은 나의 영혼의 스위트홈, 임화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정지용 늬는 산새처럼 날어갔구나! 이런 것은 아니었다, 나는 불행하다, 나는 일생 몫의 경험을 다했다, 기형도 진눈깨비 아, 김민부, 육신 밖으로 나가고 싶어 육신 밖으로 나가고 싶어  시대와 세기를 넘나들며 시, 정현종, 부질없는 시를 읽어주고 겨우겨우 일하면서 사는, 원재훈 처연..

詩人을 찾아서 2024.09.07

시 속의 시인, '오탁번'

오, 마이 캡틴! 오, 마이 탁번 [박제영]1. 탁번이라 쓰고 시라고 읽는다​시가 뭐냐고 물을 때면 선생을 불러댔다오탁번의 시를 봐라설명이 필요 없다얼마나 재밌노?시는 이런 맛이다웃다가 배꼽잡고 웃다보면슬그머니 마음 한 켠이 짠~해지는 것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그게 시다​탁번이라 쓰고 시라고 읽어댔다2. 탁본, 오탁번오탁번 선생님 뵈러 장인수 시인과애련리 원서문학관 갔던 건데성과 속을 오가며시와 문학과 우리말의 정수를 회 뜨시는선생의 강의를 들으며우리는 시종 울다 웃다 취했던 건데햄릿의 그 유명한 독백“투비 오어 낫 투비”를“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요렇게 해석하는 놈들은 죄다 가짜여웃기고 자빠질 일이지“기여? 아녀? 좆도 모르겠네.”요게 진짜여이 대목에서는 그만배꼽을 잡고 쓰러질 수밖에 없었는..

詩人을 찾아서 2024.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