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 [김규동]
기러기 떼는 무사히 도착했는지
아직 가고 있는지
아무도 없는 깊은 밤하늘에
형제들은 아직도 걷고 있는지
가고 있는지
별빛은 흘러 강이 되고 눈물이 되는데
날개는 밤을 견딜 만한지
하룻밤 사이에 무너져버린
아름다운 꿈들은
정다운 추억 속에만 남아
불러보는 노래도 우리 것이 아닌데
시간은 우리 곁을 떠난다
누구들일까 가고오는 저 그림자는
과연 누구들일까
사랑한다는 약속인 것같이
믿어달라는 하소연과 같이
짓궂은 바람이
도시의 벽에 매어달리는데
휘적거리는 빈손 저으며
이 해가 저무는데
형제들은 무사히 가고 있는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쓸쓸한 가슴들은 아직도 가고 있는지
허전한 길에
씁쓸한 뉘우침은 남아
안타까운 목마름의 불빛은 남아
스산하여라 화려하여라.
* 한번 흘러간 강물 다시 오지 않지만
해마다 이맘때면
흘러간 강물을 아쉬워 하며
한해동안 사랑하고 미워하고 꿈꾸고 실망하였지만
작은 소줏잔으로도 망각의 강물이 된다.
가버린 사람들, 나를 찾았는지, 잊었는지
알 순 없어도
서른즈음에 마흔즈음에 쓸쓸타며
시인이 되었다가 가수가 되었다가 휴머니스트가 되었다가
그리고도 허전하고 쓸쓸하면
거리를 헤매이는 낙엽이 되어 비명을 지른다.
오늘, 가슴 쓸어내리며 가버린 청춘을 그리워 한다.
송년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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