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박철]

JOOFEM 2006. 12. 17. 19:43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박철]
 
 


 
막힌 하수도 뚫은 노임 4만원을 들고
영진설비 다녀오라는 아내의 심부름으로
두 번이나 길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삼거리를 지나는데 굵은 비가 내려
럭키슈퍼 앞에 섰다가 후두둑 비를 피하다가
그대로 앉아 병맥주를 마셨다
멀리 쑥국쑥국 쑥국새처럼 비는 그치지 않고
나는 벌컥벌컥 술을 마셨다
다시 한번 자전거를 타고 영진설비에 가다가
화원 앞을 지나다가 문 밖 동그마니 홀로 섰는
자스민 한 그루를 샀다
내 마음에 심은 향기 나는 나무 한 그루
마침내 영진설비 아저씨가 찾았고
거친 몇 마디가 아내 앞에 쏟아지고
아내는 돌아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냥 나는 웃었고 아내의 손을 잡고 섰는
아이의 고운 눈썹을 보았다
어느 한쪽,
아직 뚫지 못한 그 무엇이 있기에
오늘도 숲속 깊은 곳에서 쑥국새는 울고 비는 내리고
홀로 향기 잃은 나무 한 그루 문 밖에 섰나
아내는 설거지를 하고 아이는 숙제를 하고
내겐 아직 멀고 먼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 아이엠에프보다 더 어려워져 간다. 도대체 정치가 무엇이길래 인간의 삶을 무능력하게 만드는 걸까.
  시계는 오른쪽으로 가야하는데 왼쪽으로 돌리려는 무리들로 하여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가 너무 힘들어졌다.
  가끔 고등학교 동창녀석이 이십만원만, 삼십만원만, 하면서 삥을 뜯어가는 이 어려운 시대.
  잘 사는 사람은 더욱 잘 살고 못 사는 사람은 더욱 못 사는 세상.
  만약 잘 사는 사람은 더욱 잘 살고 못 사는 사람도 조금 더 나은 삶을 산다면 그것이 좋은 것 아닌가.
  빈곤은 세습이고 그것이 변하지 않는 것인데 굳이 혁명을 일으키려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나눌 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고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정치지도자가 되게 해야 한다.
  돈이 없었었거나 교양이 부족했거나 수치심이 없었거나 더구나 불순한 생각을 가졌다면
  지도자가 될 수 없다.
  빼앗긴 오년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영진설비에 돈 사만원 쉽게 줄 수 있는 그 날이 오길.....
 
  세상의 부자는 일퍼센트라고 한다. 나머지는 그 일퍼센트를 꿈만 꾸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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