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겨울 풍경[박남준]

JOOFEM 2007. 2. 16. 22:10
 
 
 
 
 
겨울 풍경[박남준]
 
 
 
 
 
 
겨울 햇볕 좋은 날 놀러가고

사람들 찾아오고

겨우 해가 드는가

밀린 빨래를 한다 금세 날이 꾸무럭거린다

내미는 해 노루꽁지만하다

소한대한 추위 지나갔다지만

빨레 줄에 널기가 무섭게

버쩍 버썩 뼈를 곧추세운다

세상에 뼈 없는 것들이 어디 있으랴

얼었다 녹았다 겨울 빨래는 말라간다

삶도 때로 그러하리

언젠가는 저 겨울빨래처럼 뼈를 세우기도 풀리어 날리다가

언 몸의 세상을 감싸주는 따뜻한 품안이 되기도 하리라

처마 끝 양철지붕 골마다 고드름이 반짝인다

지난 늦가을 잘 여물고 그중 실하게 생긴

늙은 호박들 이 집 저집 드리고 나머지

자투리들 슬슬 유통기한을 알린다

여기저기 짓물러간다

내 몸의 유통기간을 생각한다 호박을 자른다

보글보글 호박죽 익어간다

늙은 사내 하나 산골에 앉아 호박죽을 끓인다

문밖은 여전히 또 눈보라

처마 끝 풍경소리 나 여기 바람 부는 문밖 매달려 있다고,

징징거린다
 
 
 
 
 
 
* 요즘은 아파트가 많아서 대개는 실내에서 빨래를 말린다.
전에는 마당에 빨래를 널어서 명태처럼 말려서 버석거리게 했다.
날씨는 왜그리 추운지 부엌에는 늘 물이 얼어있곤 했다.
올해는 겨울이 있는건지 없는건지 추위는 없는가보다.
추운 겨울이면 오뎅도 히트치고 호박죽도 나름대로 긴긴 겨울밤을 지루하지 않게 한다.
무우를 뎅겅뎅겅 잘라넣고 무눅하게 오래도록 약한 불에 끓이면 오뎅국물이 끝내준다.
 
이번 겨울에 나는 호박죽을 네번이나 쑤었다.
위 시에서처럼 늙은 사내가 되어 산꼭대기 아파트에 들어앉아 호박죽을 쑤었다.
아내를 위해서 부모님을 위해서 목사님을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네번이나 죽을 쑤었다.
호박과 단호박을 껍질을 벗기고 푹 삶아서 짓이기고 끓이다가 찹쌀가루를 넣고
삼사십분 저어주면 노오란 호박죽이 된다.
은근과 끈기로 만들어야 죽이 완성된다. 맛은 괜찮은 편이지만
더이상 죽을 쑤지는 않으리라.
겨울이 가고 있기때문이다.
남은 호박죽을 마저 먹고 와야겠다......

 

 


 - 허연 것이 많이 묻어 있는 것이라야 맛난 죽이 된답니다. 험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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