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봄밤에[장석남]

JOOFEM 2007. 3. 6. 22:08

 

 
 
 
 
 
봄밤에[장석남]
 
 
 
 
 
개가 짖는다
처음엔 두부장수를 짖고
오토바이를 짖고 이어서
발소리들도 짖는다
밤새 개가 짖는다
들이닥친 봄밤이 낯선 모양이다
앵두꽃과
쑥스러운 상주처럼 비켜서서 피어 있는 목련을 짖고 또
늦게 피는 복사꽃을 짖는 게로구나
개가 짖는다
개가 짖을 때
개가 봄밤을 짖을 때
나도 그 개 짖는 소리의
정 가운데 앉아보자
단정히, 매우 드문 일이지만
단정을 가장하고라도 단정히 앉아보자
 
나는 한없이 작게 흔들리다가
갑자기 열린 문 앞의 촛불처럼 바람에 휘몰리면서
그만 휙, 단 1초도 견디지 못하고
무명실 같은 연기를 등에 꽂고
사라질 것만 같다
나는 내가 한없이 낯설고
나는 내가 한없이 부끄럽고
나는 내가 한없이 가엾다
앵두꽃보다도 작은 지혜도 없이
앵두꽃보다도 작은 미련도 없이
부끄러움마저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한 채,
단 1초도 견디지 못한 채,
 
 
 
 
 
 
* 시끄럽게도 개가 짖는다.
  생물선생을 보고 짖었다가 대꾸가 없으니
  목사를 따라가 짖었다가 별재미없어 등돌리고
  사주팔자 고칠까 하여 손금쟁이보고 짖었다가 운세가 안좋아서
  손금대로 짖어댔다가
  이것도 저것도 신통치 않아 한약냄새맡고 짖어댔다가
  지칠만도 한데 이젠 서울의 예수를 보고 짖는다.
 
  앵두꽃만도 못한 지혜면서
  앵두꽃보다도 작으면서
  미친 개되어 미친듯이 짖는다.
 
  개를 알아주는 개같은 사회를 꿈꾸며
  개는 개를 알아달라고
  세살때부터 잃어버린 개꿈을 돌려달라고
  시끄럽게도 짖는다.
 
  불쌍하고 가련한 개여,
  단 1초만이라도 단정해다오.
 

'시와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누에 대한 비유[복효근]  (0) 2007.03.10
살아있는 날은[이해인]  (0) 2007.03.10
사랑은[이인원]  (0) 2007.03.05
로데오[이수익]  (0) 2007.03.03
사평역에서[곽재구]  (0) 2007.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