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치올리로의 초대[김요일]
카치올리,
유랑을 끝낸 집시들의 마지막 거처
사시사철 태양만한 보름달이 떠 있지
푸른 연기 자욱한 마을은
국경 밖에 있어
마을 어귀엔 선술집
간판도 문도 달려 있지 않아
술은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
리듬에 맞춰 카치올리카치올리 흥얼거린다네
재즈면 어떻고 탱고면 어때
누구나 솔리스트가 되어 카덴자를 연주하지
졸리진 않겠지만 잠이 들면
마을 사람들은 백 가지의 꿈을 꾸곤 해
바다 보다 출렁이는
마지막 별 보다 슬픈, 착한 꽃 보다 향기로운
그런, 뻔하고 낭만적인 꿈 있잖아
놀다 지쳐 심심해진 소녀들은
가지 끝에 발그레한 열매로 매달리기도 하고
눈꽃이 되어 날아다녀
카치올리,
시보다 사랑스러운 것들로 넘쳐나는 곳
책 밖으로 길이 나 있는 곳
가끔, 정장을 차려 입고 결혼식엘 가거나
한심해진 신을 위해 기도하기도 하지
모두 모여 함께 몸을 씻기도 해
카치올리,
달무지개 걸려 있는 마을 이름은 카치올리지만
여장남자 시코쿠는 레피시라고 불러
털보 뤼팽은 아무르가 맞다고 우기지
마을 사람들의 심장 개수만큼 불리는 이름도 제각각이야
내가 사는 땅 카치올리, 카치올리, 카치올리
오지보다 깊은 곳
모락모락 모닥불 같은 환幻 피어나는 곳
당신에게만 살짝 귀띔하고 싶은 곳
* 재즈면 어떻고 탱고면 어떠하리.
우리가 사는 곳은 어디나 카치올리,
전봇대가 서 있고
나무로 만든 벤치가 있지
내 꿈이나 네 꿈이나 다를 건 뭐야
언덕위에 하늘 닮은 집 짓고
아들 낳을까 딸 낳을까
고민할 건 또 뭐야
언젠가 말했지
내 집 근사하게 지어달라고
카치올리가 아니어도 좋아
그냥 카치올리라 부르고
지나가는 행인1
행인2
죄 불러놓고
시보다 더 사랑스런 것들로 넘쳐나는 곳을
만들어
그리곤 우리,
잔치하자
여기가 첸나이어도 좋고
탕정면이어도 좋고
샌디에고나 멕시코국경이면 어때
복되고 복되고 복된
카치올리에서 우리,
잔치하자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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