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관계[이정록]

JOOFEM 2007. 7. 1. 13:19

 

 

 

 

 

 

 

관계[이정록]

 

 

 

 

화장지 좀 바꿔주세요.

  똥꼬가 잘 쓰다듬어지지 않아요.

 

  아침 일찍 여섯 살 난 아들 겨울이가 소리 지른다. 그렇지, 서

로 쓰다듬을 때 온전한 사랑이 되지. 입술이 밥숟가락을 쓰다듬

을 때며 혓바닥이 젓가락을 쓰다듬을 때, 쌀밥도 압력밥솥 뜨건

숨결이 오래 쓰다듬은 것이지. 현미 구분도미 칠분도미도 방앗

간 미곡 탈피기가 알아서 잘 쓰다듬은 것이고, 이삭도 바람의 작

은 올들이 가으내 쓰다듬은 것이지. 호랑이 어미가 제 새끼의 목

덜미를 잘게 씹었다 놓는 것도 쓰다듬는 것이고,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끄는 것도 제 안쓰러운 나이테를 쓰다듬는 것이지.

 

 새로 생긴 할인 마트에서 똥꼬가 잘 쓰다듬어지지 않는 화장

지를 사온 엄마의 마음도 사랑이지. 관계가 좀 복잡한 마음 씀씀

이지. 왜냐하면 그곳엔 살뜰한 경제가 있거든. 눈꺼풀이 눈망울

을 쓰다듬듯, 때론 눈감아줄 줄 알아야만 다 큰 것이란다. 철 들

었다고 한단다. 철이란 것은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올 것은 오

고야 만다는 것을 믿는 것이지. 멀리서 다가오는 사랑, 벌써 곁

에 와서 볼 비비는 사랑, 이미 떠나버린 사랑을 쓰다듬는 것이

지. 가을이 여름을 소름 돋게 하고 봄바람이 고드름 끝을 어루만

지듯, 쓰다듬는 것이 세상을 키워가지. 죽은 지 천 년이 넘었는

데도 우리를 쓰다듬고 있는 어른들은 모두 철을 쓰다듬고 아픔

을 쓰다듬고 있는  어른들은 모두 철을 쓰다듬고 아픔을 쓰다듬

고 쓰다듬지 못 할 것까지 끝끝내 쓰다듬다가 가신 분들이지.

 

  나무로 다가가는 바람과 햇살과 빗물의 종교, 푸른 잎으로 외

는 주문이지. 쓰다듬는다는 것은 세상 모든 관계의 살가운 소리

이자, 힘이란 녀석이 깨어 나오는 둥우리이지. 둥우리 속 어미

새가 굴리는 작은 알들, 그 껍질 위에 나 있는 발톱 자국이지. 앙

가슴 털로만 문지를 수 있는 따뜻한 희망이지.

 

 

 

 

 

 

* 세상에 관계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나의 손은 나의 배와 관계하기 위해 숟가락을 놀려주며 입과 관계한다.

  나의 튼튼한 이는 배와의 관계를 고려하며 배려한다.

 

  세상을 살면서 무릇 쓰다듬어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쓰다듬을 것이 아주 많은 사람은 사랑이 차고 넘치는 이요,

  쓰다듬을 것이 적은 사람은 사랑이 무섭고 두려운 이다.

 

  귀차니즘때문에 사랑을 포기한 자들이 점점 많아져 가는 세상.

  사랑을 나누고 주고받고 누리는 사람이

  많아져야 세상은 비로서 살만한 세상이 된다.

  리모콘과 자동장치가 많을수록 사랑은 귀해진다.

  내 힘을 이용해 관계의 문을 여닫고

  쓰다듬을 것을 쓰다듬어야 한다.

 

  지금, 여기에서 보듬고 아우르고 쓰다듬자.  오우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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