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깊은 밥그릇[유홍준]

JOOFEM 2008. 4. 24. 23:13

                                                                                            박항률

 

 

 

 

 

 

깊은 밥그릇[유홍준]

 

 

 

 

못쓰게 된 밥그릇에 모이를 담아

병아리를 기른다 병아리가

대가리를 망치처럼 끄덕거리며 모이를 쫀다

부리가 밥그릇 속에 빠져 보이지 않는다

더 깊이 주둥이를 먹이에 박으려고

앞으로 기울어진 몸

발목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깊은 밥그릇은,병아리를 죽인다

 

 

 

 

 

 

 

 

* 국민학교 다닐 때 학교앞에는 병아리장수들이 있었다.

십원짜리 병아리를 사다 박카스상자에서 정성을 다해 키우면 중닭이 되었다가

커다란 닭이 되어 풍성한 식탁을 만들기도 했다.

병아리는 제 몸뚱아리보다 큰 개밥그릇에 머리를 처박고 개밥을 빼앗아 먹는다.

천진난만한 병아리를 개는 물지 않는다.

어느 날인가 커다란 닭이 개의 밥을 열심히, 너무나 열심히 쪼아먹었다.

순식간에 개는 닭의 머리를 이빨로 구멍을 내버렸다.

 

깊이 사랑한다는 것은 때로 구멍이 뚫려버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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