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人이 되는 계절입니다.
새벽에 새소리를 듣다[송종찬]
이름 모를 새들이
낮게 다가와 새벽잠을 깨운다
밤새 뱃속을 텅 비운
새들의 목소리가 파문을 일으킨다
그 소리 너무 밝고 맑아
한동안 눈을 뜨지 못하고 있을 때
아파트 난간을 타고 내려오는
갓난아기의 울음소리
부엌에서 밥 끓어 넘치는 소리
하루는 공복으로 시작되어
배고픈 것들만이 울 수 있고
잠자는 것들만이 흔들어 깨우나니
나는 무엇을 비워
세상을 공명하게 할 것인지
* 가을입니다.
폭풍처럼 다가왔던 여름을 무사히 넘기고 이제 겨우 무언가를 거둘 때가 되어서야 탱탱해진 열매들을 느낍니다.
사람사는 마을엔 밥냄새가 나고 사람들의 도란도란, 나즈막하지만 사랑이 넘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감자며 옥수수며 삶아먹고
포도의 단맛 복숭아의 상큼한맛도 보면서 '충만함'을 느낍니다.
그동안 장대비와 때로는 우박에도 견디며 매달려 있던 모든 것들에 감사해 하며
이제는 그 삶의 무게를 내려 놓으라고 가만가만 말해줍니다.
바람만 살짝 불어도 말그대로 추풍낙엽이 될 나뭇잎새에 수고했다고 말해줍니다.
가을입니다.
지난 여름의 여러 차례 폭풍을 견디고 많은 詩語들이 머릿속을 맴돌았을 것입니다.
가을은 시인의 계절이고 시의 계절입니다.
다들 하던 일 멈추고 시를 읊어 보시기 바랍니다.
아니 써보기까지 해보시기 바랍니다.
꼭 시가 아니어도 그리운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도 괜찮습니다.
가을에 쓰는 편지는 아마도 낙엽빛깔이 묻어날 것입니다.
학창시절을 떠올려도 좋고 어린 시절 추억에 잠길만한 소재도 많을 것입니다.
편지지에 만년필로 써내려가면 좋겠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이메일 같은 간편한 방법도 괜찮습니다.
가을입니다.
풍성한 열매들이 가득하여서 내일을 잊어버리고 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선조는 늘 그 다음을 생각합니다.
감은 따서 햇볕에 말리고 무도 잘게 썰어서 말립니다. 곶감과 무말랭이를 만드는 거겠지요.
우리도 그 다음을 생각하며 이 가을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내년에 쓸 詩를 올 가을에 詩心이 가득할 때 많이 써두시기 바랍니다.
내년에 잘 양념해서 잔치를 열고 그것들을 나누면서 행복해 하기를 소망합니다.
내년은 우리 시사랑이 십주년이 되는 해이거든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을입니다.
다들 행복하시고 고독하시고 절망하시고 용서하시고 그리워하시고 슬퍼하시고 안타까와 하시고
그러면서 사랑이 충만한 가을을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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