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지 그레이스
우리는 1% 상류층의 은밀한 사생활이라든가, 근친상간, 존속살해라는 [세비지 그레이스]의 충격적 소재 자체에 휩쓸릴 필요는 없다. 타블로이드판 신문을 몇 달은 장식했을 친어머니 살해라는 끔찍한 사건의 주체가, 최초로 합성수지를 발명한 미국의 명문가문 중 하나인 레오 베이클랜드의 손자와 그의 아내, 그의 아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해도 소재의 선정성 때문에 이 영화에 매혹되어서는 안된다. [세비지 그레이스]에는 잘못된 욕망으로 상처입은 영혼의 절규가 담겨져 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살인사건 중의 하나인 1972년 11월 11일 바바라 살해사건은, 범인이 그녀의 친아들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미국인들을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같은 제목의 소설을 톰 칼린 감독이 영화화 한 [세비지 그레이스]는, [졸도](1992년)로 베를린 영화제 테디상을 받으며 인상적인 데뷔를 했던 톰 칼린 감독이 무려 15년만에 만든 두 번 째 작품이다.
배우를 꿈꿨던 아름다운 여인 바바라(줄리안 무어)는, 레오 베이클랜드의 손자이자 합성수지를 생산하는 베이라이트사의 상속인인 브룩스(스테픈 딜런)와 결혼함으로써 상류층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한다. 결혼과 함께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었지만 바바라는 남편의 무관심과 자신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기존 상류층의 시선에 점점 방황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술과 섹스로 자신이 받은 상처를 덮으려고 한다.
영화의 전반부는 바바라의 일탈을 담는데 주력한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상류층 인사들과의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도 바바라는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남편의 위선을 폭로한다. 남편이 보는 앞에서 처음 만난 남자들의 차를 타고 밤늦게 사라졌다가 새벽에 돌아오는 행동으로 남편에게 노골적으로 반항한다. 바바라는 결혼함으로써 얻게 된 부와 명예를 벗어던지지는 못하지만, 그 안에서 일탈하려는 욕망으로 가득찬 반항적이고 퇴폐적인 의식을 보여준다. 1946년 아들 안토니가 태어났지만 부부 사이의 균열은 봉합되지 못하고 점점 더 극단적으로 벌어진다.
안토니가 성장하면서 바바라 가족은 스페인과 프랑스, 영국 등에 있는 유럽의 대도시들을 돌아다니며 호화스러운 생활을 한다. 도입부가 바바라의 일탈을 묘사하는데 주력한다면, 영화의 중반부는 안토니의 사춘기 시절부터 청년시절까지 안토니의 성장과정에 많은 부분을 할애함으로써 안토니라는 캐릭터의 심층적 탐구에 주력한다. 결말 부분에 등장하는 존속살해라는 충격적 사건이 어떻게 해서 이루어질 수 있었는지, 안토니의 황폐한 내면이 형성되는 과정을 절제된 영화언어로 묘사한다.
아들의 여자 친구와 눈이 맞는 아버지 브룩스, 그럴수록 더욱 서로를 의지하는 바바라와 그녀의 아들 안토니. 모자는 이제 단순한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의지할 수 있는 동반자적 관계로 발전한다. 그렇지만 안토니는 동성의 남자 친구에게서 사랑을 느끼고 동성애를 시작한다. 그러나 바바라는 아들의 남자 친구에게 매력을 느끼고 그를 유혹한다. 그와 한 침대에서 자고 있는 것을 발견한 안토니의 반응은 격렬한 반항이 아니라 시니컬한 긍정이다. 안토니는 옷을 벗고 어머니와 자신의 동성애 파트너가 함께 누워 있는 침대 속으로 들어간다. 아머니와 아들, 그리고 아들의 연인인 남자 친구 등 세 사람이 함께 벌이는 쓰리섬은, 기존의 도덕률을 단숨에 파괴한다. 바바라는 노골적으로 안토니와 근친상간을 하고 그럴수록 안토니의 내면은 더욱 황폐해져 간다.
줄리안 무어는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집중력과 표현력으로 섬세하고 연역하면서도 반항적이며 퇴폐적인 바바라를 매혹적으로 연기한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바바라에게 돌을 던질 수도 있고, 외면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줄리안 무어는 바바라의 상처를 드러내면서 그녀의 일탈된 행동에 내적 동기를 부여한다. 그녀가 표현해내는 인간적 깊이는 [세비지 그레이스]가 단순히 성추문과 존속살해의 스캔들에 머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또한 안토니역의 에디 레디메인은 상처입기 쉬운 창백한 외양과 반항적인 눈빛으로 불안정한 심리를 표출한다. 유년시절부터 어머니와 함께 지내면서 어머니 이상이 되어 버린 어머니와의 섹스를 통해 근친상간이 그를 얼마나 극단적 상태로 몰아 넣었는지, 에디 레디메인은 섬세하게 연기하고 있다.
[세비지 그레이스]는 충격적 소재주의에 함몰되지 않는다. 영화는 대중적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소재가 단순히 스캔들에만 머물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영화의 품격은 바바라 역의 줄리안 무어같은 뛰어난 연기자들의 호연으로도 유지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소재를 장악하고 설명적 요소를 제거한 채, 인물의 내면탐구와 인물들 사이의 관계에 집중하고 있는 연출에 의해 창조된다. 그만큼 톰 칼린 감독의 연출은 군더더기 없이 완급의 흐름을 조절하면서 주제의 촛점이 뚜렷하게 모아지는데 성공하고 있다.
우리는 1% 상류층의 은밀한 사생활이라든가, 근친상간, 존속살해라는 [세비지 그레이스]의 충격적 소재 자체에 휩쓸릴 필요는 없다. 타블로이드판 신문을 몇 달은 장식했을 친어머니 살해라는 끔찍한 사건의 주체가, 최초로 합성수지를 발명한 미국의 명문가문 중 하나인 레오 베이클랜드의 손자와 그의 아내, 그의 아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해도 소재의 선정성 때문에 이 영화에 매혹되어서는 안된다. [세비지 그레이스]에는 잘못된 욕망으로 상처입은 영혼의 절규가 담겨져 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살인사건 중의 하나인 1972년 11월 11일 바바라 살해사건은, 범인이 그녀의 친아들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미국인들을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같은 제목의 소설을 톰 칼린 감독이 영화화 한 [세비지 그레이스]는, [졸도](1992년)로 베를린 영화제 테디상을 받으며 인상적인 데뷔를 했던 톰 칼린 감독이 무려 15년만에 만든 두 번 째 작품이다.
배우를 꿈꿨던 아름다운 여인 바바라(줄리안 무어)는, 레오 베이클랜드의 손자이자 합성수지를 생산하는 베이라이트사의 상속인인 브룩스(스테픈 딜런)와 결혼함으로써 상류층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한다. 결혼과 함께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었지만 바바라는 남편의 무관심과 자신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기존 상류층의 시선에 점점 방황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술과 섹스로 자신이 받은 상처를 덮으려고 한다.
영화의 전반부는 바바라의 일탈을 담는데 주력한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상류층 인사들과의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도 바바라는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남편의 위선을 폭로한다. 남편이 보는 앞에서 처음 만난 남자들의 차를 타고 밤늦게 사라졌다가 새벽에 돌아오는 행동으로 남편에게 노골적으로 반항한다. 바바라는 결혼함으로써 얻게 된 부와 명예를 벗어던지지는 못하지만, 그 안에서 일탈하려는 욕망으로 가득찬 반항적이고 퇴폐적인 의식을 보여준다. 1946년 아들 안토니가 태어났지만 부부 사이의 균열은 봉합되지 못하고 점점 더 극단적으로 벌어진다.
안토니가 성장하면서 바바라 가족은 스페인과 프랑스, 영국 등에 있는 유럽의 대도시들을 돌아다니며 호화스러운 생활을 한다. 도입부가 바바라의 일탈을 묘사하는데 주력한다면, 영화의 중반부는 안토니의 사춘기 시절부터 청년시절까지 안토니의 성장과정에 많은 부분을 할애함으로써 안토니라는 캐릭터의 심층적 탐구에 주력한다. 결말 부분에 등장하는 존속살해라는 충격적 사건이 어떻게 해서 이루어질 수 있었는지, 안토니의 황폐한 내면이 형성되는 과정을 절제된 영화언어로 묘사한다.
아들의 여자 친구와 눈이 맞는 아버지 브룩스, 그럴수록 더욱 서로를 의지하는 바바라와 그녀의 아들 안토니. 모자는 이제 단순한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의지할 수 있는 동반자적 관계로 발전한다. 그렇지만 안토니는 동성의 남자 친구에게서 사랑을 느끼고 동성애를 시작한다. 그러나 바바라는 아들의 남자 친구에게 매력을 느끼고 그를 유혹한다. 그와 한 침대에서 자고 있는 것을 발견한 안토니의 반응은 격렬한 반항이 아니라 시니컬한 긍정이다. 안토니는 옷을 벗고 어머니와 자신의 동성애 파트너가 함께 누워 있는 침대 속으로 들어간다. 아머니와 아들, 그리고 아들의 연인인 남자 친구 등 세 사람이 함께 벌이는 쓰리섬은, 기존의 도덕률을 단숨에 파괴한다. 바바라는 노골적으로 안토니와 근친상간을 하고 그럴수록 안토니의 내면은 더욱 황폐해져 간다.
줄리안 무어는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집중력과 표현력으로 섬세하고 연역하면서도 반항적이며 퇴폐적인 바바라를 매혹적으로 연기한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바바라에게 돌을 던질 수도 있고, 외면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줄리안 무어는 바바라의 상처를 드러내면서 그녀의 일탈된 행동에 내적 동기를 부여한다. 그녀가 표현해내는 인간적 깊이는 [세비지 그레이스]가 단순히 성추문과 존속살해의 스캔들에 머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또한 안토니역의 에디 레디메인은 상처입기 쉬운 창백한 외양과 반항적인 눈빛으로 불안정한 심리를 표출한다. 유년시절부터 어머니와 함께 지내면서 어머니 이상이 되어 버린 어머니와의 섹스를 통해 근친상간이 그를 얼마나 극단적 상태로 몰아 넣었는지, 에디 레디메인은 섬세하게 연기하고 있다.
[세비지 그레이스]는 충격적 소재주의에 함몰되지 않는다. 영화는 대중적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소재가 단순히 스캔들에만 머물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영화의 품격은 바바라 역의 줄리안 무어같은 뛰어난 연기자들의 호연으로도 유지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소재를 장악하고 설명적 요소를 제거한 채, 인물의 내면탐구와 인물들 사이의 관계에 집중하고 있는 연출에 의해 창조된다. 그만큼 톰 칼린 감독의 연출은 군더더기 없이 완급의 흐름을 조절하면서 주제의 촛점이 뚜렷하게 모아지는데 성공하고 있다.
출처 : 하재봉의 영화사냥
글쓴이 : 다다 원글보기
메모 : 야우리에서 열댓명 보는 가운데 끼어서 보았다. 다들 일어서면서 허망해 하던데 왜 허망해 했을까. 난 괜찮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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