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수령 이백오십 년 된 느티나무[김명기]

JOOFEM 2010. 2. 11. 21:47

 

 

 

 

 

 

 

수령 이백오십 년 된 느티나무[김명기]

 

 

 

 

일주문 지나 천은사* 가는 길

늙은 느티나무들이 몸을 뒤틀고 있다

수령 이백오십년이라 적힌 입간판을 지나며

한 자리 그렇게 오래 서있으면 무슨 재주 있어

안 뒤틀릴까 싶다

그 앞에서 일행과 사진 한 장 찍고 돌아서는데

속내 다 드러나도록 뚫린 밑동이 안으로

해쓱한 늦가을 볕들이 졸음처럼 스르르 몰려든다

저것의 생은 얼마나 지루할까 싶어

구멍 안에 머릴 들이밀고

긴 소리 한 번 내질러 보는데

까딱없이 서서 소통의 기미 없다

침묵, 그것은 내 가벼움에 대한 단단한 대답이지 싶어

산문 밖에 쌓아두고 온 부질없는 것들

다 비워낼 구멍 하나 내 가슴에도 뚫렸으면 싶다

 

미련한 건 인간이지

그가 산 세월이 몇 갑잔데

한 갑자도 못 산 인간 하나 객쩍은 짓에 꿈쩍이나 할까

쳐다보니 아득하다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의 천은사 

 

 

 

 

 

 

* 대개 절의 입구나 마을 입구에는 느티나무가 보초를 선다.

후덕하기도 하고 넉넉하기도 하게 서 있다.

세월을 견뎌낸 그 기품은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부러움을 갖게 한다.

여름철이면 느티나무를 닮은 노인들이 그 그늘에 눕거나 앉아서 평안을 누리곤 한다.

특별히 진천에 있는 보탑사의 느티나무가 맘에 들고

천안에 있는 광덕사 느티나무도 보기에 좋다.

내지는 공세리 성당의 느티나무도 친근감을 준다.

아니, 어디에나 느티나무는 각각의 멋과 푸근함을 갖기에 친구처럼 아득하다.

수령이 이,삼백년이 되어도 친구처럼 느껴지는 느티나무.

나는 느티나무를 좋아한다.

해마다 사람들은 변해가지만 느티나무는 늘 그 자리를 지켜내고

온갖 풍파 속에서도 변함이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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