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곡비(哭婢) [문정희]

JOOFEM 2024. 6. 14. 09:39

 

 

 

 

 

곡비(哭婢) [문정희]

 

 

 

 

사시사철 엉겅퀴처럼 푸르죽죽하던 옥례엄마는

(哭)을 팔고 다니는 곡비(哭婢)였다.

 

이 세상 가장 슬픈 사람들의 울음

천지가 진동하게 대신 울어주고

그네 울음에 꺼져버린 땅 밑으로

떨어지는 무수한 별똥 주워먹고 살았다.

그네의 허기 위로 쏟아지는 별똥 주워먹으며

까무러칠 듯 울어대는 곡(哭) 소리에

이승에는 눈 못 감고 떠도는 죽음 하나도 없었다.

저승으로 갈 사람 편히 떠나고

남은 이들만 잠시 서성일 뿐이었다.

가장 아프고 가장 요염하게 울음 우는

옥례엄마 머리 위에

하늘은 구멍마다 별똥 매달아 놓았다.

그네의 울음은 언제 그칠 것인가.

엉겅퀴 같은 옥례야, 우리 시인의 딸아

너도 어서 전문적으로 우는 법 깨쳐야 하리

이 세상 사람들의 울음

까무러치게 대신 우는 법

알아야 하리.

 

             - 지금 장미를 따라, 민음사, 2009

 

 

 

 

 

 

 

* 일천구백팔십삼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군대 간 형에게 관보를 쳤지만 오지 못했고 차남인 내가 상주가 되어
염도 하고 곡도 하였다.
염하는 이가 알콜솜을 주며 얼굴을 닦으라고 해서 닦고
곡을 하라고 해서 눈물도 나오지 않는데 곡을 했다. 배운 적도 없는, 곡을 했다. 
저승 가는 길에 차비를 드려야 한다 해서 차비도 드렸다.
끝내 형은 오지 못했고 내가 상주가 되어 장례를 치루었다.
연습없이 곡을 했던 게 문득문득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