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우연한 미래에 우리가 있어서 [신용목]

JOOFEM 2024. 9. 16. 09:35

 

 

 

 

 

우연한 미래에 우리가 있어서 [신용목]



 

  열아홉의 내가
  자신의 미래를 보고 싶어서
  삼십 년을 살았다

  내 미래는 이런 거였구나, 이제 다 보았는데
  돌아가서
  알려주고 싶은데, 여전히 계속되는 시속 한 시간의 시

간 여행을 이제 멈추고
  돌아가서
  알려주면, 열아홉의 나

  자신 앞에 놓인 삼십 년의 시간을 살아보겠다 말할까

아니면
  살지 않겠다 말할까

  까만 먹지 숙제에 영어 단어 대신 써 내리던 이름과 아

무렇게나 쓰러뜨린 자전거
  바큇살처럼 부서지는 강물을 내려다 보며, 물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높은 곳에서
  끝없이 뛰어내리는 거라고

  생각하던 긴긴밤으로부터

  나는 겨우 하루를 살았는데, 생각 속에서 삼십 년이 지

나가고
  넌 그대로구나
  꿈에서는 스물하나에 죽은 친구가 나타나, 우리가 알고

지낸 삼 년을 다 살고
  깨어나면 또 죽고

  열아홉 살 다락방, 고장 난 시곗바늘을 빙빙 돌리다 바

라보면
  창밖은 시계에서 빠져버린 바늘처럼 툭 떨어진 어둠,
  그러니까
  열아홉을 떠올리는 일은 열아홉이 되는 일이 아니라 열

아홉까지의 시간을 다
  살게 하는데, 어둠 속에 촘촘히 박혀 있는
  시곗바늘처럼

  눈을 감으세요, 이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이미 죽어서

이 이야기를 듣기 위해 당신은 죽어야 합니다
  귀를 막으세요,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나는 죽어서 이

이야기를 영영 모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당신은 어디 있나요, 두리번거리며

  태어나지 않은 사람의 죽음을 찾습니다 긴긴밤이라면 그건
  우리가 다 아는 이야기,
  잠으로는 견딜 수 없는 어둠을 발끝으로 더듬으며 죽은

사람의 생일이 지나가는 것처럼

  나는 삼십 년을 살았는데, 네게는
  하루가 지나갔구나
  어느 날 삼십 년 후의 내 기억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열아

홉 나에게 닿아서는

  다락방, 시계 속 단단하게 감겨 있던 검은 태엽처럼
  같은 밤을 돌고 도는 생각으로부터

  나는 시작된다, 꿈의 긴 복도가 늘어선 형광등처럼 하

나씩 꺼지는 아침마다
  나는 내가 모르는 내 몸에서 빠져나와 내가 알고 있는

내 몸으로 들어간다
  내 몸은

  내가 영원히 졸업하지 못하는 학교,
  점심시간
  까무룩 잠들었다 깨어나니 아무도 없고
  리넨 커튼 사이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낮이라는 피를

잔뜩 묻힌 톱처럼
  그 빛은
  짐승의 배 속에서 죽은 새끼를 꺼내듯
  정오의 단단한 시간을 갈라
  잠시
  내 인생을 전부 보여주었지, 도굴꾼이 다 털고 간 공동
묘지처럼 모든 창문이 파헤쳐진 풍경을 한칸씩 열고
  안녕, 스물하나에 죽은 친구가 열아홉의 나에게 인사를

한다 네 얼굴 앞에서도
  이상하게 나는 참을 수 없이 네가 보고 싶은 마음에 가

만히 손을 내밀었는데
  손가락이 닿자 부드러운 모래처럼
  은빛 비처럼
  네 얼굴이 흘러내리고, 그것이 작은 알갱이로 부서지는
네 목소리라는 것을 안 나는
  말렸지, 아무 말도 하지 마

  고개를 저으며

  그러나 너는 얼굴과 목소리를 맞바꾸며 

  말한다, 끝까지 닿을 수 없는 수평선 그것이 나를 감았

다고
  아름다운 것
  그것이 나를 죽였다고, 끝까지 아픈 것
  산수유 노란 꽃들이 공중에 속삭여놓은 목소리처럼 흩

어져 있었다
  말려도, 내 손가락이 너를 잃은 오후의 운동장에서 햇

빛은 교문처럼 닫히고
  네 목소리는 사라져 사물함 자물쇠처럼 허공에 채워진

다, 그랬잖아

  우린 모두 매점 앞에 내놓은 파란 의자에 앉았다 갔잖

아, 그때 물속인 듯 느리게 날리던 낙엽들을
  모두가 당첨되는 가을의 추첨식을
  이별을
  다 치렀잖아, 딸기우유 갑을 노을처럼 남기고
  하루의 깊고 짙고 흔들리는 커튼 뒤로
  뒷모습으로
  떨어졌잖아, 저녁의 바닥에서 발견된 것은 차가운 밤뿐

이지만
  내 몸은
  영원히 졸업하지 못하는
  나의 학교, 그러나 우리의 계절이 같았을까
  생각하며
  혼자 등교한 마음들이 나란히 책상 줄을 맞추고 공책을

펼치면
  한 명의 내가 '나는 이 세상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

다' 써놓고 웃고 또
  한 명의 내가 '나는 잘하고 있습니다' 써놓고 울고, 열아

홉의 내가 책상 위에
  걸상을 올리고
  그러나 우리의 밤은 같았다고,
  생각하며
  스무 살의 내가 창문을 닦는다 그건 스물하나의 내가

깨고 만 창문, 바람이 운동장 모래를 들고 와 깨진 자리를

문지른다, 내 기억 속 삼십 년이
  단 하루 그날을 지워내듯 단 하루
  그날에 베이듯
  이제 그만하자, 그 말 속에 미래가 들었는지 과거가 들

었는지 몰라서
  책을 펼치면,

  미래는 결국 망하는데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 있어서

절망이 있다면
  과거는 이미 끝났는데 아직 죽지 않은 마음이 있어서
희망이 있다면
  현재는 어디에도 없는데

  어딘가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
  살고 있다면

  그런 망각에 대해서라면
  비가 전한다,
  바닥에 부딪쳐 빗방울은 모두 기억상실증에 걸려버렸어
  그렇지 않고서야 흙탕물로 고여 첨벙일 리 없잖아 거기

한 바가지 보태진
  구정물 같은 마음으로
  아니, 허기진 짐승처럼 바닥을 핥으며 앞다퉈 하수구

속으로 뛰어들 리 없잖아
  비의 입장에서 보자면
  우산은 망각의 현장을 바꾸는 거겠고, 뺨은 망각을 슬

픔으로 바꾸는 귀갓길인데
  아니
  서른에는 뭘 했나, 서른하나가 지우고 간 서른 살 어쩌면

서른아홉이 지우고 간
  마흔의 나는 간혹 지인의 졸업식을 찾아다녔네, 검은

교복으로 갈아입고
  흰 꽃을 바치고
  우두두두 시계에서 빠져버린 바늘처럼 하나같이 구부

정히 앉아서는
  술을 마셨지, 아무도 누가 시침이고
  초침인지 묻지 않으며
  밤낮이 돌아가는 창문을 태엽으로 바라보았지, 한 번은

사랑이었으나 나머지는
  후회여서
  채점 이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인생을
  복습하며,
  이제 강을 버리고 페트병에 담긴 물이 삐뚤빼뚤한 책상줄

처럼 환한 냉장고에서
  흐르는 것을 배우기 위해 종이컵으로 건너가는 것을

  습지를 알기 위해 상 위에 쏟아지는 것을
  복기하며,
  그러나 그 순간 투명한 물에 담겼던 형광등 빛이 내 몸

속에 들어와
  책상을 긋던 도루코 칼처럼 하루를 가르고
  일 년을 가르고,
  내 몸속에 바다를 꺼내 과학실 해부대에 핀으로 꽂아

놓은 것처럼
  삼십 년 전부가 환하게 걸려 있는데

  그때 알았을까,
  어쩌면
  내 몸은 삼십 년을 뚫어놓은 구멍이라는 것을, 어둠마

저 환하게 비추는 슬픔 속에서
  어쩌면
  어제와 오늘을 뚫어놓은 잠처럼, 내 몸은
  뾰족하게 깎은 인생으로

  시간을 뚫어놓은 구멍, 그 속에서 회오리치는 사랑이

붉은 피로 돌고 있어서
  연필심처럼 짧아지는 청춘을 감추려고
  때로 숨었을까,
  시간이 후라시를 비추며 어슬렁거리는 밤의 능선이 있

어서 망각의 덤불 속에 웅크리고 앉아
  내 속의 아이가 깨지 않기를
  그래서 울지 않기를
  바랐으나, 매번 아이는 울고 다급히 아이의 입을 틀어

막느라 아침마다
  한 명씩 몸속의 나를 죽이고

  텅 빈 구멍으로 깨어나는,

  그게 내 잠이라서
  꿈은
 죽은 자들의 삶을 보여줍니다, 삶이 죽은 자들의 꿈을

보여주는 것처럼
  삼십 년의 절반을 가져간 밤의 깊은 곳에 몸을 누이고,
슬픔의 학교를 여는 것
  태어나지 않은 자의 생일처럼,
  책상의 유언은 자신을 나무로 기억해달라는 것이 되겠지
  걸상의 유언은
  자신을 높은 곳으로 솟구치는 분수의 바닥이나 먼 풍경

을 고스란히 앉혀놓은 전망대로 기록해달라는 것이
  되겠지만
  어느 날 깨어나면, 여전히 불 꺼진 교실에 줄지어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겠지
  한때 새들의 집성촌이었으나
  거미의 생가로 남는 밤, 지평선처럼 그어진 칠판에 '자

율 학습' 네 글자를 현기증으로 건네주며
  밤이 눈을 뜨고 귀를 열고 시작하는 이야기,
  그러나

  그건 지나온 길에 모르고 흘린
  빵 부스러기 같은 것, 새들이 쪼아 먹고 퍼덕이며 하늘

을 온통 시리게 만들던 것
  쥐들이 주워 먹고
  작고 날카로운 이빨로 밤의 물컹한 몸통을 갉아내며 벌

겋게 신음하게 만들던 것
  어느 날, 삼십 년 후의 내 기억이
  쉬는 시간
  매점 앞에 나란히 모여 앉은 열아홉 머리 위에서 물들

기 직전의 산수유꽃으로
  바람에

  이유 없이 흔들렸던 것,
  긴긴밤이라면

  눈을 뜨세요, 이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만 여태 살아서

이 이야기를 잊기 위해 당신은 살아야 합니다
  귀를 여세요, 이 이야기를 듣기 위해 나는 살아서 이 이

야기를 영영 듣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잠은 망각을 잡히는 전당포라서, 우리는 꿈을 들고 가

슬픔을 바꿔 옵니다 긴긴밤이라면
  그건
  우리 다 모르는 이야기,
  잠으로만 오를 수 있는 계단을 한 걸음씩 더듬으며 나

는 당신의 다락방에서 하루를 청합니다

  거기 태고가 있으나 나는 겨우 삼십 년,
  하루가 지나간다

 

 

                    - 우연한 미래에 우리가 있어서, 문학과지성사, 2024

 

 

 

 

 

 

 

* 창작이라는 것이 세월에 따라 그 트렌드는 바뀌는 것이 맞다.

앞에 창작자가 만든 것을 따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학이든, 시든, 음악이든, 그림이든

까딱 잘못하면 표절이라는 함정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점점 창작이 어려워지는 것도 맞다.

시에 있어서도 정형화한 시는 이미 앞선 선배들이 다 창작을 해놓아서

다르게 창작해야 하므로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그래서 시에 있어서도 짧은 시보다는 긴 시를 선호하고 

글자를 기울게 하거나 자빠뜨리거나 글자를 키우거나 작게 하거나 밑줄을 긋거나 

도형을 넣어서 그림처럼 만들거나 별별 짓을 다 하고 있다.

위에 올린 시는 무려 열네페이지나 되는 긴 시이다.

길게 쓰지 않으면 시를 잘 못지은 시라고 선배시인들이 가르치는지는 모르겠으나

너무 길어서 끝까지 읽기도 어렵다.

시를 낭송하다보면 무슨 내용인지 뭘 말하는지도 잊어버릴 지경이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쪽으로 진화할 수 밖에 없다는 건 이해하지만 

요즘의 트렌드에 동의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글자를 기울이거나 자빠뜨리거나 글자의 크기를 다르게 하거나 밑줄을 긋거나

진하게 하거나 도형을 넣거나 길이가 아주 길거나 하는 시는 올리지 않는다.

위의 시를 올리는 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올리는 것이며 시민의 한사람으로 의견을 주기 위한 것이다.

 

긴 시를 좋아하는 시인이 있다면 차라리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읽으라고 말하고 싶다.

그 소설이 훨씬 시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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