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비두로기 [하재일]

JOOFEM 2024. 9. 25. 14:16

 

 

 

 

 

비두로기 [하재일]

 

 

 

 

쿠 카페 앞 나무 그늘 아래

비두로기 응답하라

무슨 낱말을 찾고 있니

 

메밀 씨 뿌린 느낌에 기분이 좋다

찹쌀 멥쌀 흩어진 말 찾아서

하루 이틀 사흘

 

비두로기는 여러 마리

나는 혼자 머뭇머뭇

 

쿠 카페 앞 나무 그늘 아래

비두로기 응답하라

수수쌀 뿌린 느낌에 기분이 좋다

 

무슨 말을 찾고 있나

팥알 녹두알 동부콩을 찾아서

한 달 두 달 석 달

 

비두로기는 낱말을 찾아서 콕콕

나는 문장을 찾아서 후룩후룩

 

새는 날아가고 물소리만 들리네

도사리, 도사리· · ·

 

 

               - 모과는 달다, 달아실, 2024

 

 

 

 

 

 

 

* 중학교 다닐 때 국어사전을 펼쳐 낱말을 익히는 게 일종의 취미였다.

흐지부지,란 낱말이 원래는 휘지비지란 말이 변해서 한자가 아닌 낱말이 되었다거나

비두로기,란 낱말이 비둘기가 되었다거나

백일홍나무가 배롱나무로 되었다거나

변화무쌍한 낱말들을, 비둘기가 콕콕쪼듯이 찾았었다.

새로운 낱말을 찾는다는 건 바닷가에서 잘 생긴 몽돌을 찾는 것과 같다.

 

중학교 2학년 때 문학행사에 나가 시가 당선 되어 상장과 상품을 받았는데

국어를 가르치는 담임선생이 '이거 니가 쓴 거 맞아?'라고 헛소리를 해서 기분이 안좋았었다.

그때 마음에 걸린 낱말이 '아로롱다로롱'이었다.

혹시 저 난장이똥자루 같은 국어선생이 자기도 모르는 낱말을 구사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싶었다.

어린 나이에 저 난장이똥자루는 전공이 국어는 아니었을거야,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쿠 카페 앞 나무 그늘 아래 앉아 국어사전을 펼쳐보는 것도 좋겠다.

비두로기처럼 콕콕 쪼아가면서......

 

'시와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웨이터의 나라 [남길순]  (1) 2024.10.05
장마 [하재일]  (0) 2024.09.28
백색공간 [안희연]  (0) 2024.09.18
우연한 미래에 우리가 있어서 [신용목]  (9) 2024.09.16
복희 [남길순]  (1) 2024.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