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공간 [안희연]
이누이트라고 적혀 있다
나는 종이의
심장을 어루만지는 것처럼
그것을 바라본다
그곳엔 흰 개가 끄는 썰매를 타고
설원을 달리는 내가 있다
미끄러지면서
계속해서 미끄러지면서
글자의 내부로 들어간다
흰 개를 삼키는 흰 개를 따라
다시 흰 개가 소리 없이 끌려가듯이
누군가 가위를 들고 나의 귀를 오리고 있다
흰 개가 공중으로 흩어진다
긴 정적이
단 한 방울의 물이 되어 떨어지는
이마
나는 이곳이
완전한 침묵이라는 것을 알았다
종이를 찢어도 두 발은 끝나지 않는다
흰 개의 시간 속에 묶여 있다
-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창비, 2018
* 썼던 글이 '삭제' 를 누르지 않았는데도 삭제될 때가 있다.
머릿속이 하얘진다.
다시 그글을 떠올리며 써보지만 원래의 글과는 다른 글이 된다.
비스므리 쓴다해도 마음 한구석에 찜찜함이 머문다.
백색공간은 그런 것일까.
어릴 때에도 치매라는 것이 있어서 외할머니가 넌 누구니? 물었을 때
난 누구가 되었다.
요즘은 점점 의학이 발달함에도 치매환자가 늘어나고 있다.
어쩌면 나에게도 그런 백색공간이 올지도 모른다.
자식을 앞에 놓고도 넌 누구니?하고 물을지도 모른다.
나를 제외한 모든이가 누가 될, 그런 백색공간.
그런데 백색공간에 갇히면 행복하다고 한다.
누구는, 누구들은 멀쩡한 공간에서 행복하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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