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터의 나라 [남길순]
이곳의 법칙은 받아적지 않는다는 것
웰던으로 익힌 티본스테이크 칠면조날개튀김 카르파초
기름을 적당히 두른 청경채 카베르네소비뇽
웨이터는 머리가 둘 셋 넷으로 늘어난다
눈동자가 유독 빛난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새우와 연어와 후추와 바다와 골목 향과 바질과 식초와
올리브
이 많은 주문을 어떻게 외우는지
그는 노련하지만
먹어보지 않아 맛을 모른다는 것
접시와 접시를 손가락 사이에 펼치고
웨이터가 온다
그릇과 그릇이 부딪고 스푼과 포크, 나이프와 나이프
정중하게
공손하게
테이블이 돌아가고
식사를 마치고 나가면 이 모든
기억은 와르르
여기서는 잊어버리는 게 생존의 기술이라는 것
조용히 꽁초를 밟아 끄듯
테이블을 엎고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는 것
- 한밤의 트램펄린, 창비, 2024
* 식당에 가서 단품인 경우는 별 문제가 없지만
더 구워라, 덜 구워라, 맵게 해라, 덜 맵게 해라
뭐를 듬뿍 넣어라, 뭐를 빼라......
복잡한 주문을 하게 되면 혹시 주문한대로 안 나오면 어쩌지 걱정을 하게 된다.
걱정은 걱정인형에게 맡기면 되겠지만 가끔 시킨대로 안 나오는 경우가 있다.
나는 주면 주는대로 그냥 먹는 편인데 웨이터를 불러서 따지는 사람도 있긴 하다.
웨이터가 머리가 다 좋은 건 아니기에 빼먹기도 하고 더 넣기도 한다.
서브웨이에 가면 말하기 귀찮아서 '그냥 대충 넣어 주세요.'라고 말한다.
더 먹으면 어떻고 덜 먹으면 어떤가.
버거킹에도 주문을 넣을 때 토마토를 추가하든가 양상추를 추가하든가 하던데
역시나 귀찮아서 키오스크에 뜬 그대로 주문해버린다.
복잡하게 살면 이득이고 단순하게 살면 손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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