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인되다[이수익] 깨지기 쉬운 질그릇과 같아서 견인되다[이수익] 견인차가 불법주차 승용차 한 대를 끌고 불이 난 듯 급하게 달려간다. 앞 범퍼가 견인차 후미에 덜컹, 얹힌 승용차는 제 주인에게 피랍 사실을 알리지도 못한 채 어디론가 행방이 감춰지고 있다. 죄를 지었으므로 체신은 볼품없이 구겨졌으면서도 두 손.. 시와 감상 2008.08.10
전어속젓[안도현] 전어속젓[안도현] 날름날름 까불던 바다가 오목거울로 찬찬히 자신을 들 여다보는 곰소만(灣)으로 가을이 왔다 전어떼가 왔다 전 어는 누가 잘라 먹든 구워 먹든 상관하지 않고 몸을 다 내준 뒤에 쓰디쓴 눈송이만한 어둔 내장(內臟) 한 송이를 남겨놓으니 이것으로 담근 젓을 전어속젓이라고 부른다 .. 시와 감상 2008.08.05
길일(吉日)[이수익] 길일(吉日)[이수익] 보도블록 위에 지렁이 한 마리 꼼짝없이 죽어 있다. 그곳이 닿아야 할 제 생의 마지막 지점이라는 듯. 물기 빠진, 수축된 환절(環節)이 햇빛 속에 드러나 누워 있음이 문득 지워진 어제처럼 편안하다. 부드럽고 향기로운 흙의 집 떨치고 나와 온 몸을 밀어 여기까지 온 장엄한 고행이.. 시와 감상 2008.08.03
누가 묻거든[이생진] 황규백 누가 묻거든[이생진] 누가 날 묻거든 그 사람 저 무인도로 가더라고 그렇게 전해주라 울더냐 웃더냐 묻거든 울지도 웃지도 않고 그저 떠내려 가더라고만 전해주라 묻는 이 없으면 하는 수 없지만 일부러 전할 생각은 말아라 * 묻는 이 없으면 할 수 없지만 혹 묻는 이가 있다면 그 섬에 간다고, .. 시와 감상 2008.07.28
히키코모리[허은희] *히키코모리[허은희] 나의 살던 고향은 배고프지 않아도 먹어주어야 하고 꼴 보기 싫어도 만나주어야 하고 울면서 웃어주어야 하는 가끔씩 거짓눈물도 공손히 떨굴 줄 알아야 하는, 내가 해야 할일은 나처럼 생긴 것들이 하는 대로 흉내내기 진지한 말투에 고상한 몸동작까지 익히며 순한 양처럼 무리.. 시와 감상 2008.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