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상희구] 수박[상희구] 한 친구와 점심을 먹었는데 후식으로 수박 두 쪽이 나왔다 위의 쪽은 꽤 살집이 큰 것이었고 아래 쪽은 그 보다 작았다 나는 으레 겸양이 있는 사람인 척 아래 쪽의 작은 것으로 집으려는데 난데없이 파리 한 마리가 위 쪽 큰 조각의 수박 위에 내려앉는 게 아닌가 나는 머뭇거리면서 아래.. 시와 감상 2005.09.20
남편[문정희] 남편[문정희]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누워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 시와 감상 2005.09.16
우리들의 저녁식사[허수경] 우리들의 저녁식사[허수경] 토끼를 불러놓고 저녁을 먹었네 아둔한 내가 마련한 찬을 토끼는 물끄러미 바라본다 오늘 요리는 토끼고기 토끼도 토끼를 먹고 나도 토끼를 먹는다 이건 토끼가 아니야, 토끼고기라니까! 토끼고기를 먹고 있는 토끼는 나와 수준이 똑같다 이 세계에 있는 어떤 식사가 그렇.. 시와 감상 2005.09.09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이수명]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이수명] 고양이 비디오를 틀어놓고 고양이가 하나 둘 셋 의자에 하나 둘 셋 바닥에 하나 둘 셋 창틀에 하나 둘 셋 고양이를 관람하는 고양이들 고양이를 관람하는 고양이를 관람하는 고양이들 거대한 고양이 인형들 모두들 고양이를 추모한다. 고양.. 시와 감상 2005.09.09
들어가서 여는 방-Orpheus[김태형] 들어가서 여는 방-Orpheus[김태형] 단 두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어떤 입구 앞에서 나는 머뭇거렸다 두 눈은 신기루처럼 푸르게 떨리고 있었다 열리거나 닫힌 무수한 방들의 목록을 읽어내려가다가 어떤 남자가 개설한 방에 잘못 들어갔다 달이 이울기 전에 그녀를 만나야 했으므로 .. 시와 감상 2005.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