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사라진 것들의 목록 [천양희]

JOOFEM 2008. 9. 20. 14:47

 

                                                                                                                  정재호

 

 

 

 

 

 

 

사라진 것들의 목록 [천양희]

 

 

 





골목이 사라졌다 골목 앞 라디오
수리점 사라지고 방범대원 딱딱이
소리 사라졌다 가로등 옆 육교
사라지고 파출소 뒷길 구멍가게
사라졌다 목화솜 타던 이불집
사라지고 서울 와서 늙은 수선소집
목포댁 재봉틀소리 사라졌다 마당
깊은 집 사라지고 가파른 언덕길도
사라졌다
돌아가는 삼각지 로터리가 사라졌다 고전
음악실 르네상스 사라지고 술집 석굴암이
사라졌다 귀거래다방 사라지고 동시상영관
아카데미하우스 사라졌다 문화책방
사라지고 굴레방다리 사라졌다 대한늬우스
사라지고 형님 먼저 아우 먼저 광고도
사라졌다
세상에는 사라진 것들이 왜 이리
많은가 나도 나를 버리는데 반생이
걸렸다 걸려 있는 연(緣)줄 무슨
연보처럼 얽혀 있다 저 줄이…… 내 업을
끌고 왔을 것이다 만남은 짧고 자국은
깊다 누구나 구멍 하나쯤 파고 산다는
것일까 사라진 것처럼 큰 구멍은 없다

 

 

 

 

 

 

 

* 늘 변하지 않고 있어주길 바라지만 사라지는 것 천지다.

원남동로타리 시랑이라는 카페가 그랬고 광화문 인왕다방이 그랬다.

가끔은 정전이 되어 휘파람소리 가득했던 대동극장이 그랬다.

여의도를 빙 둘러 키작은 벚꽃나무가 사라지고 키큰 나무가 되어 있다.

종로이가에 학원들이 사라졌다.

분필 분질러 조는 학생에게 던지던 선생님이 사라졌다.

임예진이 이덕화하고 연애하던 하이틴 영화도 사라졌다.

크낙한 국민학교 교문도 사라지고 작고 초라한 교문만 남아있다.

도대체 남아있는 건 무엇인가.

온통 사라지는 것 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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