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림
꽃[오봉옥]
아프다, 나는 쉬이 꽃망울을 터트렸다.
한때는 자랑이었다.
풀섶에서 만난 봉오리들을 불러모아
피어봐, 한번 피어봐 하고
아무런 죄도 없이, 상처도 없이 노래를 불렀으니
이제 내가 부른 꽃들
모두 졌다
아프다, 다시는 쉬이 꽃이 되지 않으련다
꽁꽁 얼어붙은
내 몸의 수만 개 이파리들
누가 와서 불러도
죽다가도 살아나는 내 안의 생기가
무섭게 흔들어도
다시는 쉬이 꽃이 되지 않으련다.
* 데네브들에게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으로 태어나려는가' 하고 질문을 했더니
의외로 다시는 태어나지 않겠다,는 답이 많았다.
지상에서 너무 쉬이 꽃을 피우고 상처받고 아팠던, 아주 아팠던 기억때문에
금방 답이 튀어나온 게다.
우리의 인생이 꽃처럼 화사하고 생명력이 넘칠 때
너무 많은 자랑을 한 까닭이다.
그래서 쉬이 상처받고 쉬이 아팠나보다.
다시는 쉬이 꽃이 되지 않고 나무가 되고 싶다는 소망도 있다.
그것조차 상처와 아픔을 견뎌내야 하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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