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섭
해바라기[황동규]
둘이 앉아 있었네
해 설핏한 가을날 벤치.
남몰래 중년을 훌쩍 넘겨버린 두 사람,
그들의 무릎 위에 볕 한 조각씩 환했네.
머리 위 노란 은행잎들
각기 제 곡선 그으며 떨어지고
한 곡선은 그들의 발치에 닿았네.
발밑에선 파리한 풀잎 몇
모양보다는 눈짓으로 흔들리고 있었네.
"헤어지지 말아야 했지요"
"이빨로 이를 씹게 되더라도"
"하필 그 때 눈보라"
"걷히자 바로 딴 세상"
그들은 서로 쳐다보지도 않고
짧게 짧게 말을 주고 받았네.
말마디들 몇 차례 더 오가고
마디풀
마디 같은 한 세상이 갔다가 왔네.
그리고 갔네.
* 가을은 우리게 무릎 위의 볕 한 조각도 감사하게 하는 계절이지요.
여름 한철, 쉬임없이 누렸던 것들이 얼마나 감사한 거였는지도 깨닫게 하는
감사하게 하는 계절이지요.
뒤돌아보면 마디같은 한 세상이 지나가지만
아쉽기보다는 나름 짜릿했었다, 소중했었다, 감사했었다, 그리 느끼는 계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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