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젓 사러 광천에 가서[정희성]
주일날 새우젓 사러 광천에 갔다가
미사 끝나고 신부님한테 인사를 하니
신부님이 먼저 알고, 예까지 젓 사러 왔냐고
우리 성당 자매님들 젓 좀 팔아주라고
우리가 기뻐 대답하기를, 그러마고
어느 자매님 젓이 제일 맛있냐고
신부님이 뒤통수를 긁으며
글쎄 내가 자매님들 젓을 다 먹어봤겠느냐고
우리가 공연히 얼굴을 붉히며
그도 그렇겠노라고
* 성당과 교회의 차이는 내 교회이냐, 아니냐의 차이인 것 같다.
성당은 내 성당이 없어도 아무 지역이나 가서 미사를 드리면 된다.
교회는 개교회(個敎會)주의여서 내가 속한 교회에서만 예배드려야 한다.
한 포도나무에 달린 열매만 인정이 된다는 거다.
ㄱ성당의 신도는 건축헌금을 내서 ㄴ성당을 짓는다. 그리고 계속 ㄱ성당을 다닌다.
ㄷ교회의 신도는 건축헌금을 내서 ㄷ교회를 더 키운다. 그리고 ㄷ교회만 다닌다.
그래서 신부님은 자매님들의 젓을 다 먹어보지 못했지만
목사님은 자매님들의 젓을 다 먹어봤을 게다.
내 교회냐, 아니냐의 미묘한 차이인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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