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죽은 시인을 위한 낭독회 [채인숙]

JOOFEM 2024. 8. 29. 20:35

       최삼용 시인의 시집 출간 기념, 시하늘 시낭송회에 초대된 플로우님, 초록여신님 그리고 주페가 시낭송을 했었다.

 

 

 

 

죽은 시인을 위한 낭독회 [채인숙]

 

 

 

 

죽은 자와 산 자가

한 지붕 아래 동거하는 섬에서

우리는 만났습니다

 

당신은

오래 쓴 시를 

숨어서

읽고 있었습니다

 

혼자 쓰고

혼자 지우는

시간을 견디는 사람들은

늘 등이 굳어 있고

매사 다정하기가 힘이 듭니다

 

쓰다가 멈춘 문장을 

너무 많이 가졌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검은 모래 해변을 함께 걸으며

저녁이 오면 세상의 온갖 색을 거두어 들이는

빛의 노동에 대하여 이야기했습니다

 

어떻게 죽고 싶냐는 질문을 한 적은 없지만

시인은 죽어가는 얼굴을 붉게 감추었습니다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는 시는 희망이 있는 걸까요

 

주목나무 아래 앉아

우리가 함께 읽지 못한 시를 

혼자 낭독합니다

 

우리의 낭독회는

아무 관객이 없고

죽은 당신만이

박수를 쳤습니다

 

 

               - 여름 가고 여름, 민음사, 2023

 

 

 

 

 

* 시낭독과 시낭송은 어감이 사뭇 다르다.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일천구백팔십년도에는 시낭독회라고 하여

시를 읽었댔다.

내 기억으로는 원남동 로터리에 있는 '시랑'이라는 찻집 등에서

박희진, 구상, 성찬경 등등의 시인들이 시낭독운동을 했었댔다.

그후에 어느 순간부터 시낭송으로 바꾸어 시를 전문가들이 낭송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하나의 시작이었고 지금까지 시낭송운동이 쭉 이어져 오고 있다.

시사랑카페도 모임때마다 시 한 편을 낭송하는 게 전통이 되어 이어져 오고 있다.

시낭독이라고 하면 그냥 시를 읽는 것만 같고

시낭송이라고 하면 감정을 담아 노래하듯 읊는 것 같아서

뉘앙스나 감상 느낌이 가슴으로 다가와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 같다.

(지금도 시낭독회를 하고 있는 모임이 있기에 병행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요즘 시의 트렌드는 길게 쓰는 것이어서 시낭송하기엔 벅차고 끝까지 듣기엔 감동감화가 부족하지 않나 싶다.

아뭏든 시낭송이 일상생활이 되고 시낭송공간이 많아지고 넓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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