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이제와 미래 [여세실]

JOOFEM 2024. 8. 31. 09:59

해마다 노니 하얀 꽃과 열매를 보았는데 계속 보게될 미래다.

 

 

 

 

 

이제와 미래 [여세실]

 

 

 

 

  분갈이를 할 때는

  사랑할 때와 마찬가지로 힘을 빼야 한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장마였다 올리브나무가 죽어가고 있

었다 나는 무엇을 잡아두는 것에는 재능이 없고 외우던 단

어를 자꾸만 잊어버렸다

 

  잎이 붉게 타들어간 올리브나무는 방을 정화하는 중이라

고 했다 흙에 손가락을 넣어보면 여전히 축축한, 죽어가면

서도 사람을 살리고 있는 나무를 나는 이제라고 불러본다

흙을 털어낸다 뿌리가 썩지 않았다면 다시 자랄 수 있을 거

라고

 

  이제야 햇볕이 든다

  생생해지며 미래가 되어가는

 

  우리는 타고나길 농담과 습기를 싫어하고 그 사실을 잊어

보려 하지만

  이미 건넜다 온 적 있지 뿌리를 넘어 줄기를 휘감아 아주

날아본 적

 

  양지를 찾아다녔다

  산에서 자라는 나무의 모종 하나를 화분에 옮겨 심으면

야산의 어둠이 방 안에 넝쿨째 자라기도 한다는 걸

 

  진녹색 잎의 뒷면이 바스라졌다

  시든 가지에도 물을 주면 잎새가 돋았다

 

 

               - 휴일에 하는 용서, 창비, 2023

 

 

 

 

 

 

 

* 다음달에 이사를 가려고 화분을 정리하는 중이다.

천장까지 닿는 커피나무 여섯그루중 한 그루는 밑동 십센치만 남기고 톱질을 했다.

그리고 역시나 천장에 닿는 노니를 똑같이 밑동 십센치만 남기고 톱질을 했다.

밑동 잘린 두 나무에서 며칠만에 새 싹이 마구마구 나오고 있다.

마치 '주인님 날 버리고 가면 안 되어유!' 라고 하는 것 같다.

할 수 없이 데리고 이사를 가야할 판이다.

오늘은 비파나무 세 그루중 두 그루를 밑동 십센치만 남기고 톱질을 했다.

그래도 새 싹이 나오면 '알았어유, 데리고 갈 거구만유!'라고 해야겠다.

물만 주면 미래가 쑥쑥 자란다.

같이 살다 같이 죽자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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