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마른 물고기처럼[나희덕]

JOOFEM 2010. 4. 19. 22:44

 

 

 

 

 

 

 

마른 물고기처럼[나희덕]

 

 

 

 

 

어둠 속에서 너는 잠시만 함께 있자고 했다

사랑일지도 모른다, 생각했지만

네 몸이 손에 닿는 순간

그것이 두려움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너는 다 마른 샘 바닥에 누운 물고기처럼(*)

힘겹게 파닥이고 있었다, 나는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몸을 비비는 것처럼

너를 적시기 위해 자꾸만 침을 뱉었다

네 비늘이 어둠 속에서 잠시 빛났다

그러나 내 두려움을 네가 알았을 리 없다

조금씩 밝아 오는 것이, 빛이 물처럼

흘러들어 어둠을 적셔버리는 것이 두려웠던 나는

자꾸 침을 뱉었다. 네 시든 비늘 위에,

 

아주 오랜 뒤에 나는 낡은 밥상 위에 놓인 마른 황어들을 보았다

황어를 본 것은 처음이었지만 나는 너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황어는 겨울밤 남대천 상류 얼음 속에서 잡은 것이라 한다

그러나 지느러미는 꺾이고 빛나던 눈도 비늘도 시들어 버렸

낡은 밥상 위에서 겨울 햇살을 받고 있는 마른 황어는 말이 없다

 

 

(*) 莊子의 '大宗師'에서 빌어옴.

"샘의 물이 다 마르면 고기들은 땅 위에 함께 남게 된다. 그들은 서로 습기를 공급하기 위해 침을 뱉어주고 거품을 내어 서로를 적셔준다. 하지만 이것은 강이나 호수에 있을 때 서로를 잊어버리는 것만 못하다."

 

 

 

 

**  어둠속에서 낯선 물체가 몸에 닿는 일이란 두려움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다.

캄캄한 밤에 보이지도 않는데 물고기가 손에 잡힌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펄떡이는 것도 주체할 수 없지만 지느러미의 까끌거림과 타액처럼 끈적거림이 몸을 오그라들게 할 것이다.

삼십년전쯤 영주위의 석포라는 조그만 마을에 있는 제련소에 실습을 나갔다가 숙소에서 머물 때,

캄캄한 밤에 느닷없이 등에 장수하늘소가 들어가 버렸다.

그 때의 그 느낌은 공포영화보다 더한 공포였다.

예측을 하면 덜 무서울텐데 모르는 물체의 까끌거림과 그 크기에 압도되어 기절할 지경이었다. 

 

눈물이든 콧물이든 침이든 공포스러울 때 몸에서 뱉어내는 게 공포를 이겨내려는 전략인가보다.

내가 나를 적셔주는......

 

'시와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침시[최하림]  (0) 2010.04.23
오누이[김사인]  (0) 2010.04.22
흰 꽃은 흰 손으로 따라[이기철]  (0) 2010.04.18
봄날과 시 [나해철]  (0) 2010.04.17
아름다운 번뇌[복효근]  (0) 2010.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