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정호승] 무릎[정호승] 너도 무릎을 꿇고 나서야 비로소 사랑이 되었느냐 너도 무릎을 꿇어야만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데에 평생이 걸렸느냐 차디찬 바닥에 스스로 무릎을 꿇었을 때가 일어설 때이다 무릎을 꿇고 먼 산을 바라볼 때가 길 떠날 때이다 낙타도 먼 길을 가기 위해서는 먼저 무릎을 꿇고 사막을.. 시와 감상 2008.12.28
따개와 뚜껑[장석주] 따개와 뚜껑[장석주] 병뚜껑을 여는 일은 실은 병의 목을 따는 것이다. 잘 훈련된 刺客들이 병의 목을 따기 위해 내려온다. 순식간이다, 딱, 하는 신음과 동시에 뚜껑이 몸통에서 떨어지고 몸통의 체액과 비밀의 거품을 뿜어낸다. 이 분리의 순간은 無頭人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풀밭에 함부로 뒹구는 .. 시와 감상 2008.12.26
크리스마스[여태천] 크리스마스[여태천] 두 손을 높이 들고 불안은 고드름처럼 자란다. 당신은 맨발이었고 나는 유령처럼 당신을 안았다. 굴뚝과 굴뚝처럼 우리는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 온 천지가 크리스마스라 하여 축제분위기이다. 교회는 말할 것도 없고 믿지 않는 사람들도 즐거움의 날이다. 하지만 말구유에 낮은 .. 시와 감상 2008.12.25
소[신달자] 소[신달자] 사나운 소 한 마리 몰고 여기까지 왔다 소몰이 끈이 너덜너덜 닳았다 미쳐 날뛰는 더러운 성질 골짝마다 난장쳤다 손목 휘어지도록 잡아끌고 왔다 뿔이 허공을 치받을 때마다 몸 성한 곳이 없다 뼈가 패였다 마음의 뿌리가 잘린 채 다 드러났다 징그럽게 뒤틀리고 꼬였다 생을 패대기쳤다 .. 시와 감상 2008.12.20
[스크랩] 서평-김혜원 시집『물고기 시계』 나비와 손의 서정 ㅡ김혜원 시집 『물고기 시계』(시로여는세상) 이 경 호(문학평론가) 김혜원이 오랜 만에 펴낸 두 번째 시집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작품은「비 개인 오후」였다. 무엇보다도 “호박꽃 깊숙이 든/나비 한 마리”의 정체가 예사롭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비 잠.. 시와 감상 2008.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