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다른 골목[황인숙] 막다른 골목[황인숙] 문은 헤맨다 열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토록 완강하게 그는 문을 흔들고 있다 문은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는 부술 듯이 문을 두드린다 문은 흔들리면서 마음을 굳혔다 난 몰라, 널 모른다고! 알고 싶지도 않고 그는 헤맨다 여태껏도 헤매다가 우연히 이 문을 .. 시와 감상 2007.04.29
그 깃발, 서럽게 펄럭이는[박정대] 그 깃발, 서럽게 펄럭이는[박정대] 기억의 동편 기슭에서 그녀가 빨래를 널고 있네, 하얀 빤스 한 장 기억의 빨랫줄에 걸려 함께 허공에서 펄럭이는 낡은 집 한 채 조심성 없는 바람은 창문을 마구 흔들고 가네, 그 옥탑방 사랑을 하기엔 다소 좁았어도 그 위로 펼쳐진 여름이 외상.. 시와 감상 2007.04.28
늦은 오후의 식당[엄원태], 오후 세 시[김상미] 늦은 오후의 식당[엄원태] 그 식당 차림표에는 열 가지가 넘는 메뉴가 준비되어 있고 가격 또한 저렴한 편인데 가령, 낙지볶음은 한 접시에 기껏 오천원이다 홀 한쪽에는 주방으로 쓰는 씽크대와 장탁자가 있고 식탁은 세 개 의자는 열세 개 있다 손님은 하루 평균 여남은 명인데, .. 시와 감상 2007.04.26
자전거도둑[신현정] 자전거 도둑 [신현정] 봄밤이 무르익다 누군가의 자전거가 세워져 있다 자전거를 슬쩍 타보고 싶은 거다 복사꽃과 달빛을 누비며 달리고 싶은 거다 자전거에 냉큼 올라가서는 핸들을 모으고 엉덩이를 높이 쳐들고 은빛 폐달을 신나게 밟아보는 거다 꽃나무를 사이사이 빠지며 달 .. 시와 감상 2007.04.20
도장골 시편 - 민달팽이[김신용] 도장골 시편 - 민달팽이[김신용] 냇가의 돌 위를 민달팽이가 기어간다 등에 짊어진 집도 없는 저것 보호색을 띤, 감각의 패각 한 채 없는 저것 타액 같은, 미끌미끌한 분비물로 전신을 감싸고 알몸으로 느릿느릿 기어간다 햇살의 새끼손가락만 닿아도 말라 바스라질 것 같은 부드럽고 연한 피부, 무방.. 시와 감상 2007.04.20